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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총각선생 "저도 할 말 많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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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장용연 교사(27.서울 수색 초등학교)

"죄송합니다. 여자분이 오실 줄 알고…." 교사로 발령을 받으며 맨 처음 들었던 말이다. 내 이름이 '연'으로 끝나 그랬을지도 모른다. 남자교사가 너무 희귀하다 보니 새로 오는 교사도 당연히 여선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 교무실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꽃밭'이었다. 여자교사들로 가득 찬 교무실에서 한동안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쩔쩔맸다.

첫 발령에서 남자교사들에게는 흔치 않는 2학년을 맡게 됐다. 남자교사들은 보통 고학년을 맡는다는 불문율을 미리 들었기 때문이다. 코흘리개들과 뛰놀자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학년이 체질에 맞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영향인지 몰라도 그 다음 두 해 동안 내리 1학년을 담당하게 되었다. 지금은 큰 애들이 내 어깨까지 올라오는 5학년을 맡고 있다. 이제야 뭔가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남자교사가 희귀하다 보니 재밌는 일도 많다. 처음 학교에 나가면 젊은 남자교사들은 엄청난 관심과 귀여움의 대상이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적인 관심과 집중, 예쁘게 봐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남자교사가 귀한 데다 더군다나 어린 남자교사는 더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우만 해도 지금 있는 학교에서 유일한 '총각교사'라 교무실에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어떤 때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아마 그건 배부른 얘기일 것이다. 복에 겨운 넋두리라는 쪽이 옳다.

다음으로는 아이들의 반응이다. 처음으로 5학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다른 반 교실에서는 새로 만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벌써 장난을 치느라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9반 교실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이건 웬일일까. 왁자지껄하기는커녕 절간에 온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일제히 교실 앞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 그리고 기대감이 눈동자에 한데 어우러진,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표정들. 남자 담임 선생은 무섭다는 잘못된 공포심 때문일까. 아이들의 이런 긴장 어린 시선이 한 몸에 쏟아지자 내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학부모들의 경우 남자교사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남자교사가 여자교사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희소성 때문일 게다. 어떤 아이들은 6년 내내 여자교사한테만 배우고 졸업하는 경우도 있어 골고루 배워 보고 싶은 것도 부모들의 욕심일 것이다. 그래서 남자교사에 대한 아이들과 학부모의 관심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자교사가 희귀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 우선 학교에서 힘을 쓰는 일은 대개 남자교사의 몫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적합한 성역할과 성의식을 심어주는 것도 힘들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남자교사를 담임으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이들이 아마 상당수를 차지할 것이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한 번이나 두 번이면 많이 만난 경우다. 현재 전체 교직원 중 남자 비중은 10% 남짓하다. 남자교사의 비율이 좀 더 늘어나야 남자교사의 부담도 덜고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교사가 편하기만 한 직업은 아니다. 퇴근시간이 빠르고 방학이라는 긴 휴가를 누리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매일 30~40명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날 때쯤에는 으레 목이 쉬게 마련이다. 방학 동안에 쉬지 않느냐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아이들에게는 방학이지만 교사들에게는 자율연수의 기간이다. 상당수의 교사가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고 나은 부분을 더 키워 나가는 연수 과정을 밟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교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굉장히 편안한 직업이라는 믿음이 굳어져 버렸다. 물론 안정적인 직장이라 외환위기 이후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사나 학교를 단순히 직업이나 직장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필자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라면서 교사의 꿈을 키워 왔지만 아직도 반 아이들에게 좀 더 잘 가르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들고, 교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나빠져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만을 바라보는 우리 반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오늘은 화 안 내야지 하면서도 1교시만 지나면 화를 내게 되고, 또 하루가 끝나면 그날 화낸 것을 후회하고…. 매일 말썽 피우고 속을 썩이기만 하는 아이들, 그래도 이 녀석들이 내 힘의 원천이다. 교사가 된 지 4년밖에 안 되는 햇병아리지만 지금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 행복하다. 총각교사에게 보내는 여자 선생님들의 관심과 애틋한 시선이 조금씩 엷어지는 게 다소 불만스러워도 말이다.

장용연 교사(27.서울 수색 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