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수준 FTA지만 … 13억 시장 파급효과 미·EU보다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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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타결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두 나라의 보호산업을 인정하되 다른 분야에서의 개방도를 높이는 쪽에 초점을 뒀다. 민감 품목(한국 농수산품, 중국 공산품)의 개방을 놓고 공방을 벌이며 시간을 끌기보다 빠른 FTA 타결을 통해 경제협력 효과를 배가시키자는 양국의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장 관심을 모은 상품 분야에서는 한국이 품목 수 기준 92%(수입액 기준 91%), 중국이 품목 수 기준 91%(수입액 기준 85%)의 관세를 20년 안에 없애기로 했다. 이번 협상에서 중국은 총 7428개 품목 중 스테인리스 열연·강판과 같은 중저가 철강을 비롯한 1649개(733억7000만 달러) 품목의 관세를 FTA 발효와 동시에 철폐하기로 했다. 한국도 전체 품목(1만1272개) 가운데 원유·음향기기·의약품·반도체 제조장비를 비롯한 6108개(418억5000만 달러)의 관세를 즉시 철폐한다. 이와 함께 발효 10년 안에 한국은 냉장고·세탁기·화장품 시장을, 중국은 냉장고·세탁기 시장을 완전 개방하기로 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농수산품에서 한국은 중국산의 공세를 방어하는 데 주력했다. 중국산 농수산물 670개 품목(수입액 기준 60%)을 초민감 품목에 넣었다.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얘기다. 이 중 614개 품목은 관세가 지금과 똑같이 유지된다. 쌀을 비롯해 고추·마늘·양파와 같은 양념채소, 쇠고기·돼지고기가 대표적 품목이다. 다만 대두·참깨·팥처럼 이미 중국산 수입량이 많은 품목에 대해서는 일정 수입 물량을 넘어설 때만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저율관세할당(TRQ)’을 적용하기로 했다. 냉동꽃게나 건조다시마 같은 품목은 일정 기간 뒤 관세를 내리는 부분 감축 방식으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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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역시 한국 농수산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대가를 충분히 얻었다. 자동차·액정표시장치(LCD) 등 자국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지켜냈다. 거꾸로 말하면 이들 업종의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FTA에 따른 중국 수출 증가 효과를 누리기 어렵게 됐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우태희 통상교섭실장은 “자동차·LCD는 국내 기업의 중국 현지화 추진, 철강은 중국 내 공급 과잉 상황을 감안할 때 개방 공세보다 우리 농산물에 대한 우려를 최대한 반영했다”며 “대신 급성장하는 중국 내수 소비재 시장 진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밥솥·믹서와 같은 고급 생활 가전, 건강·웰빙용품의 관세 혜택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서비스 분야 개방 확대는 중국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홍콩·대만 등 중화권을 뺀 나머지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한국에 열었다. 이번 FTA를 통해 한국 기업이 중국 현지 기업과 합작할 때 지분을 49%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중국 내에서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보호기간이 20년에서 50년으로 늘어나고, 지난 9월 발효된 한·중 영화공동제작협정도 FTA에 반영돼 보다 확실한 보장을 받는다. 다만 서비스 분야는 FTA 발효 2년 뒤 양측이 개방하기로 한 분야에 대해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서비스시장 개방을 위한 내부 준비가 필요하다는 중국의 논리를 받아들인 결정이다.

 중국이 맺은 FTA 중 처음으로 금융을 22개 분야 중 하나로 넣은 점도 눈에 띈다. 국내 금융회사가 중국에 진출한 뒤 중국 당국이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는 업계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를 거쳐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또 ‘금융서비스위원회’를 열어 상대국 금융회사의 애로사항을 해소해 주기로 했다. 원산지·통관 분야에선 700달러 이하 제품은 원산지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통관시키기로 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FTA라고는 볼 수 없지만 한국이 세계 주요 경제국 중 처음으로 중국과 FTA를 맺었다는 것은 경제협력과 지역 문제 해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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