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금요일] 진화하는 중국식 자본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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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0년 전 미국에 한 인물이 등장했다. 미 금융역사가인 존 스틸 고든은 “그의 등장 이후 미 자본주의가 질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코닐리어스 반더빌트(1794~1877)다. 그의 별명은 ‘철도왕’이다.

 고든은 “1860년대 철도는 오늘날 정보기술(IT)이었다”며 “반더빌트가 뉴 머니(New Money)의 대표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올드 머니(Old Money)는 농장주나 큰 상인이었다.

 미 자본주의는 반더빌트의 등장과 함께 산업혁명을 거쳤다. 반더빌트는 ‘창업자(Entrepreneur) 시대’의 아버지였다. 반더빌트 이후 존 피어폰트 모건(금융), 앤드루 카네기(철강), 존 D 록펠러(석유) 등이 탄생했다. 그리고 긴 시간의 간극 뒤에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창업자들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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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탕으로 오늘의 중국을 읽는 한 인물이 있다. 중국판 포브스 억만장자 리스트 후룬(胡潤)리포트의 회장인 루퍼트 후지워프(44)다. 그는 중국 대륙의 돈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이다. 그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은 중국의 반더빌트”라고 단언했다.

 - 반더빌트처럼 마윈이 시대를 가른단 말인가.

 “중국의 올드 머니는 대부분 땅부자였다. 기업인(企業人)은 있었다. 대부분 국유기업을 불하받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기업인(起業人·Entrepreneur)은 사실상 없었다.”

 - 중국에서 창업자 시대가 열리는 것인가.

 “그렇다. 마윈은 젊은이의 영웅이다. 그들은 그가 보여준 혁신과 과감함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따라 하고 싶어 한다. 이전까지 중국 젊은이들의 우상은 경제 변화 시기에 일확천금을 쥔 인물이었거나, 당의 주요 인물 또는 고위 관료였다. 마윈의 성공으로 중국에선 거대 국영 또는 공공기업 회장, 부동산 재벌과 다른 인류가 출현하고 있다.”

 - 경제적 변화도 일어나고 있는가.

 “요즘 중국에선 정보기술(IT) 2차 붐이 일고 있다. 1차 붐의 주인공은 포털이었다. 지금은 알리바바와 같은 전자상거래와 모바일 관련 회사들이다. 반면 지는 해도 있다.”

 - 지는 태양은 어떤 것들인가.

 “부동산과 철강 산업이 좋지 않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20여 년 동안의 주력 산업도 흔들리고 있다.”

 후지워프 말대로라면 마오쩌둥(毛澤東)이 194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바꿔놓은 중국이 마윈 등장으로 ‘혁신과 도전’의 진짜 자본주의 국가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중국 부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창업으로 성공한 뉴 머니들은 어떨까. 후지워프는 “새로운 부호들은 자긍심이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 과시적이란 얘기인가.

 “서서히 그런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1860~

1880년대 미국을 도금시대(Gilded Age)라고 하지 않는가. 돈 자랑하는 시대란 뜻이다. 요즘이 중국판 도금시대라 할 만하다.”

 - 반더빌트 가문 사람들이 프랑스의 고성을 사고 그랬다. 중국 부호도 그런 소비 행태를 보이는가.

 “최근 서방 언론이 최고급 승용차인 롤스로이스를 한꺼번에 10대씩 산 중국 부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중국의 뉴 머니는 자신들이 스스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러워한다. 성공담을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 중국 부호들이 서방 억만장자들과 다른 점도 있을 듯하다.

 “내가 보기에 큰 차이점은 중국 부호들이 더불어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열정이 아주 강렬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늘 어울려 공부한다. 집단적으로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한다.”

 알리바바 주식은 68달러에 뉴욕증시에 상장됐다. 지난 5일(현지시간) 주가는 108달러를 웃돌았다. 페이스북 등이 상장 직후 곤두박질했던 전철을 따라가지 않고 있다. 마윈의 재산은 286억 달러(약 31조원)에 이른다. 세계 20위 부호다. 중국에선 1등이다.

 - 중국 억만장자 순위에서 마윈의 독주가 이어질 듯하다.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후룬리포트를 보면 최근 16년 새 1등이 열한 차례나 바뀌었다. 미국은 20년 동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1등이었다. 반면 중국은 지금 억만장자 춘추전국시대다.”

 - 왜 그럴까.

 “중국 경제, 특히 민간부문이 아주 빠르게 바뀌고 있어서다. 게다가 중국은 크게 17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이들 지역마다 넘버원 부자들이 있다. 중국 경제가 아주 다원화돼 있다는 얘기다.”

 - 마윈을 위협할 만한 인물이 이미 떠오르고 있다는 말인가.

 “샤오미의 레이쥔(雷軍) 사장을 꼽을 수 있다. 내 눈에 비친 그는 서방이 개발한 기술을 과감하게 베낀다. 일종의 희화화 이기도 하다. 이런 인물은 언젠가 창조해낸다.”

 - 중국 거시경제 변수는 부채거품이다. 이 거품이 붕괴하면 중국 억만장자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이 시험대에 오른다. 올드와 뉴 머니가 나란히 말이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올드 머니를 덮칠 것이다. 새로운 부호들의 생존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얘기다. 위기 속에서 새로운 승자가 탄생할 텐데, 그들은 바로 ‘마윈과 그의 아이들’일 것이다.”

 - 새로운 부호들 때문에 중국의 정치 지형도 바뀔까.

 “현재 중국 인민대표 가운데 16% 정도가 부르주아들이다.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마윈 등은 부정부패와 거리가 좀 있다. 떳떳하다. 그들은 공산당이나 중앙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뉴 머니들의 발언권이 강해진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루퍼트 후지워프 회장

1970년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현재 국적은 영국이다. 이튼칼리지와 더험대에서 중국어와 일본어, 회계학을 공부했다. 그는 “동아시아 지역과 숫자를 공부한 걸 살려 중국 부호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가 바로 ‘중국의 포브스 400’인 후룬리포트다. 그는 99년부터 부호들의 재산과 스토리를 추적해 소개하고 있다. 지금은 부호들을 상대로 한 명품 마케팅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나는 마케터가 아니라 분석가로 불리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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