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엎드려 비노니…예술이여 구원이 되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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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45)의 `마지막 장인`(부분). 기도하는 자세의 목조 해골이 거울 속에 무한 반복되는 세상을 응시한다. 해골은 작가의 분신이자, 예술을 둘러싼 가공된 신화에 질문을 던지는 이다. [사진 갤러리현대]

육각형 좌대 위에 실물 크기 목조 해골이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초월적 존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듯한 자세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매끈함이 느껴질 만큼 잘 깎았다. 좌대는 거울로 되어 있다. 해골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도취한 걸까.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거울로 반사돼 영롱하게 부서진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전준호(45) 개인전 ‘그의 거처’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첫 작품은 회화 나무를 통으로 깎아 만든 목조 해골 ‘마지막 장인’과 동명의 단편 소설이다. 대학 졸업 후 불상 공장에서 2년간 일한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묻는다. 강태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그는 당대 작업의 관행이 되어 버린 아이디어와 제작의 이분화, 미술가와 장인, 창작과 비평 또는 해설, 그리고 매혹과 분석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질문한다”고 평했다.

전준호는 지난 5년간 문경원ㆍ전준호 듀오로 활동했다. 전시의 소모성, 비평의 부재 등 예술에 대한 공통된 문제의식 하나로 2009년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미지로부터의 소식(News from Nowhere)’으로 세계적 미술제인 카셀 도쿠멘타(2012)에 한국 미술가로는 20년 만에 참여했다. 같은 해 광주 비엔날레에서 ‘눈(目) 예술상’을 받았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다. 두 사람은 내년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다.

6년만의 국내 개인전인 이번에도 문씨와 협업한 영상 ‘묘향산관’을 내놓았다. 고수ㆍ한효주가 출연했다. 베이징이 북한 식당에 모인 미대 동창생들의 이야기가 연극 혹은 무용처럼 펼쳐진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었던 세대의 이야기다.

국내 미술계에 전준호의 등장은 ‘마이너리티의 돌풍’이라 할 만했다. 외항선원인 아버지는 대개 바다에 있었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부산의 달동네를 지켰다. 재수 끝에 부산 동의대에 진학했다. “늘 가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서울대나 홍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사동서 대관전 치르기도 어려웠다. 영국으로 유학(첼시 미술대학 대학원 졸) 간 이유 중 하나”라고 털어놓았다.

-왜 예술을 할까.
“지인 중 한 분이 ‘미술관에 가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하고 느낀다’고 하더라. 우리는 더러 ‘왜 사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미술관에는 그같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 많다는 얘기다. 우리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볼 때 다르게 보고 질문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끊임없이 작동하는 게 아닐까.”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가.
“큰 그림을 보는 사람, 일렁이는 파도에 현혹되지 않고, 파도를 일으키는 심연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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