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찾은 역대 회장단 "법치주의에 반하는 주장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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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갈등이 법조계로 확산되고 있다. 현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집행부가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거듭 촉구하자 전임 변협 회장들이 “법치주의에 반하는 주장”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정재헌(77·41대), 천기흥(71·43대), 이진강(71·44대), 신영무(70·46대) 전 변협 회장은 1일 서울 강남구 변협 사무실을 방문해 위철환(57·47대) 회장과 면담을 했다. 비공개로 이뤄진 이날 면담에서 정 전 회장 등은 “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을 위반하는지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인데 변협이 일부 편향된 의견을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유가족을 돕는 것은 좋지만 법치주의에 입각해 근본원칙을 지키면서 해 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당초 이들은 보다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성명서를 준비했으나 이날 면담에서는 표현의 수위를 낮췄다. 이날 참석자 외에도 김두현(88·30대) 전 회장 등 전임 회장 3명이 함께 조찬 모임을 갖고 이들과 의견을 함께했다.

 변협 역대 회장들이 이례적으로 우려를 나타낸 이유는 현 집행부가 그간 수차례 세월호특별법 관련 입장을 발표하면서 회원들에 대한 의견 수렴을 소홀히 했다는 데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변협은 공익법률지원단을 꾸려 유가족 지원에 나섰다. 7월에는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입법 청원을 했다. 이후 법 통과가 지연되자 같은 달 24일 위 회장 등의 이름으로 “제대로 된 진실규명을 바란다면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는 등 ‘특별법 통과’를 수차례 촉구했다.

 특히 8월 25일 열린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위 회장 등이 ‘4·16 특별법 제정 촉구’를 결의하자 전임 회장들이 나섰다는 얘기다. 이진강 전 회장은 “학계에서도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수사권·기소권 부여 문제에는 균형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난 동행명령제도를 답습하고 있는 것도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현 집행부에 대한 재야법조계 내부의 불만이 ‘세월호특별법’이란 뇌관에 의해 터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 집행부가 정치적 이슈들에 사사건건 지나치게 많은 성명을 내면서 ‘변협의 정치단체화’를 우려한 이들의 불만이 쌓여 이번 사건으로 불거졌다는 해석이다. 한 원로 변호사는 “현 집행부가 정제되지 않은 일부 의견만을 반영한 성명서를 남발하다 보니 ‘대체 왜 저러냐’는 불만을 가진 변호사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날 전임 회장들과의 면담 후 위 회장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순수하게 돕고 진상 파악과 재발 방지를 한다는 목적밖에 없다”며 “변협이 편향됐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또 “진상을 조사하는 방법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 수사권·기소권을 주는 방안이 있었던 것”이라며 “제대로 조사하는 게 목적이지 방법이 무엇인가는 지엽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변협은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만 보장된다면 수사권·기소권 부여 여부와 관계없이 법 통과를 바란다”고 한 발 물러섰다.

전영선·박민제·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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