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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채택·기관보고 … 유족이 난리 쳐야만 들어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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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배신의 연속이었다. 정치 싸움만 있고 유족은 안중에도 없었다.”

 김병권(50) 세월호 유족대책위원장은 유족들이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재합의안을 거부한 이유가 “정치권의 행태에 불신의 벽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1일 서울 광화문광장 유족집회 천막에서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다.

 불신이 쌓인 계기는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의 활동이었다. 김 위원장은 “정치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증인 채택이고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 등의) 기관보고이고 간에 유족들이 난리를 쳐서야 겨우 억지 격으로 들어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식의 특위 활동이 이어지면서 불신과 분노가 쌓였다”고 덧붙였다. “국조 특위에 정치인들이 진심을 갖고 임했다면 (세월호특별법) 재합의안이 아니라 그보다 못했던 1차 합의안을 갖고도 얘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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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위원장은 “그나마 지난 7월 중순 세월호특별법 입법 청원서를 낼 때만 해도 기대를 가졌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먼저 말한 게 아니라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특별법을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말뿐이었다. 입법 청원을 한 뒤 새누리당과 만났는데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았다. 유족과 야당이 ‘특별법에 이런 것 넣어 달라’고 만들어가면 ‘이건 되고 이건 안 된다’는 식의 가지치기만 했다. ”

 그는 “야당도 버리고 싶은 게 유족들 대부분의 심정”이라고 전했다. “1차, 2차 합의안을 만들 때 유족들 의견조차 사전에 묻지 않았다. 그러고선 합의안을 들고 와서 이해해 달라, 동의해 달라고 한다”는 이유였다. 김 위원장은 “믿을 수 없는 정치권들이 특검을 구성하겠다는데 유족들이 받아들이겠느냐”며 “그래서 수사·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위를 꾸리자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사·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위가) 사법체계를 흔든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유족들과 난상토론 해보자. 우리 논리가 틀렸다면 깨끗이 포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의 요구는 하나로 정리된다. “내 가족이 왜 희생됐는지 낱낱이 밝혀줄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21일로 광화문광장에서 39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47)씨도 같은 입장이다. 그는 20일 페이스북에 “제가 정말 두려운 건 제가 잘못되는 게 아니라 유민이 왜 죽었는지 못 알아내는 거다. 제대로 된 특별법이 통과되면 그때 기쁘게 밥 먹을 거다”라고 적었다. 현재 김씨는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진 상황이다. 21일에는 하루 종일 천막에서 누워 지내다시피 했다.

 유족들은 “희생자 가족들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특별법 논란이 이어져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일부 주장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정명교(34) 세월호 일반인희생자 유가족대책위 대변인은 “민생법안은 얼마든지 세월호 문제와 별개로 처리할 수 있다”며 “정치권 싸움 때문에 국민 생활이 주름지고 있는 현실을 감추려고 유족들 핑계를 대지 말라”고 말했다.

 고려대 현택수(한국 사회 문제 연구원장) 교수 역시 “세월호 피로감을 얘기하는 데 그건 유족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병권 위원장은 “(수사·기소권을 갖는 조사위를 요구하는) 원안을 밀어붙이겠지만 여야와 정부가 대안을 만들어오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호진·최모란·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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