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감염병 학자 "에볼라 치료·예방조치 3만 명은 받았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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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출혈열 사망자가 여러 나라에 걸쳐 1200명을 넘어선 가운데 그간 에볼라 치료·예방조치가 필요했던 사람이 3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치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과의 올리버 브래디(사진) 연구원은 21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온라인판에 게재된 칼럼에서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지금까지 3만 명은 에볼라 치료·예방조치를 받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뎅기열 등 감염병의 확산·통제 모델을 연구하는 학자다.

 브래디는 에볼라 치료·예방이 필요한 사람의 우선순위를 크게 네 그룹으로 나눴다. 첫째가 에볼라 환자와 그 가족, 둘째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이다. 에볼라 발생지에서 일하는 구호단체 직원과 공무원, 여행자를 각각 셋째·넷째 그룹으로 꼽았다. 이어 각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의 감염 위험도를 따져 치료·예방조치가 필요한 사람 규모를 추산했다(go.nature.com/vv98gv).

 20일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에볼라 감염자가 2240명, 사망자가 1229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공식 집계가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실제 피해 규모가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브래디는 에볼라 발병지가 도시로 확대되면서 감염 위험은 커지고 잠복기(21일) 동안 감염의심자를 추적하는 것은 더 힘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분석 결과는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치료제·백신 수요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치료제 지맵은 이미 바닥났고 다른 실험용 약물도 턱없이 부족하다.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개발된 지맵은 영장류 실험만 마친 상태에서 WHO의 승인 아래 현재 응급환자 치료에 쓰이고 있다. 앞서 미국인 의사 2명이 이 약 덕에 목숨을 건졌고, 19일 미국에서 공수된 약을 투여받은 라이베리아 의사 2명과 나이지리아 의사 1명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기존 생산량이 10~12회 투여량(dose)에 불과해 이미 재고가 바닥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성분만 알면 쉽게 합성할 수 있는 저분자 화학약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맵은 에볼라 항원의 특정 부위만 골라 결합하는 단세포군 항체(monoclonal antibody) 세 종류를 섞어 만든다. 이런 특수 항체를 만들기 위해선 생쥐를 이용해 얻은 항체를 암(골수종)세포와 융합시켜 증식시킨 뒤 그 유전자 일부를 다시 사람의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인간화’된 단세포군 항체를 얻은 뒤에는 대량 생산을 위해 식물을 이용한다. 항체 유전자를 담배 바이러스에 주입해 담배(니코티아나)를 감염시킨 뒤 감염 세포에서 항체만 추출·정제해 사용한다. 이 같은 담배를 이용한 대량 생산과정에만 몇 달이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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