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품귀에도 사재기는 없었다|광주, 혼란속에서도 강력사건은 오히려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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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광주=특별취재반】 5·18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광주시내 대다수 일반시민들의「시민정신」은 살아있었다. 과격시위대의 총기탈취·도청점거·관공서파괴, 그리고 계엄군의 진입등 유례없는 혼란이 빚어졌던 지난10일동안 광주시는 치안 부재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광주의 내일을 걱정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모자라는 물건들을 서로 나눠쓰고 간첩을 잡아 당국에 인계했으며 부상자를 위해 헌혈에 앞장서고 상가에서는 외상으로 생필품을 주는등 곳곳에서 미덕을 꽃피웠다.
많은 시민들은 자체수습위에 참가, 과격행동에 자제를 호소하고 자경단을 만들어 스스로 마을경비에 나서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가벼운 환자가 중환자에게 침대를 비워주기도 했다. 광주시민들은 어려움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이 정신을 바탕으로 내일의 새광주건설에 앞장서고있다.
시위대가 전남도청을 점거하는동안 많은 총기가 시중에 흘러들어갔으나 은행강도를 비롯한 강력사건은 없었다.
16개 시중은행·10개신용금고·1백93개 새마을금고에서는 단한건의 현금탈취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마을금고는 자체경비와 금고가 허술해 평소에 도난사고가 많이 일어났던 곳이다.
22일 하오3시쯤 김성수씨 (31·운전기사·광주시서구화정동)가 이웃 2층집에 숨어있던 여자간첩2명을 잡아 당국에 인계했다.
광주시서구양동∼농성동사이 들고개주민 문모씨(49·회사원) 는 24일부터 이웃 5가구씩을 1개조로 자경단을 조직, 마을경비와 절도방지운동을 펴고있다.
시위가 일어나기 전에는 한달에 평균 45건의 강력사건이 일어났으나 사태중 강력사건은 26일 동구학운동 최씨일가 피살사건뿐이었다.
경찰이 업무를시작한 29일현재 금은방등의 강·절도 사건신고는 한건도 없다.
광주교도소가 3번이나 습격받았으나 모두 일반시민과는 관계없는 과격파의 소행이었다.
도청이 시위대에 점령됐던중에도 종합상황실과 부지사실엔 교도소를 공동으로 방어해야한다는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19일하오3시50분쯤 광주시 동구 수기동 현대극장앞에서「데모」군중에 포위된 2명이 1㎞나 도망가다 광주천에 떨어져 부상하자 광주적십자병원정형욋과 의사4명과 간호원2명이 돌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들것에 실어 데리고가 치료해주기도했다.
또 많은 병원에선 일반경환자가 중상자에게 침대를 비워주기도했다. 사태가 과격했던 21일전남대병원을 비롯, 적십자병원·광주기독병원에 부상자가 한꺼번에 몰려 피가모자라자 한시민이 적십자혈액원소속 이동헌혈차를몰고 거리를 누비며 간호원들을동원, 헌혈에 나섰다. 전남대병원앞과 동구양림교등지에 헌혈차가멈추자 시민30여명이 헌혈했다.
적섭자혈액원의경우 평소 하루 30여명이 현혈했으나 21일에는 1백25명, 22일엔 2백19명이헌혈해 혈액부족사태는 빚지않았다.
한일병원(동구황금동) 박윤식욋과 (동구궁동) 김기창냇과 (동구광산동) 임학택욋과등 개인병원들도 계속문을열고 전의사와 간호원이나와 시민·학생·군경 가릴것없이 무료로 치료와 수술을 해줬다.
한편 이번 사태중 쌀·고기등 생필품이 부족했으나 시민들은 사재기를 삼가 적은 물건이나마 나눠쓰기도 했다. 또 일부식품점은 현금이 없는 시민들에게 외상으로 생필품을 주는등 서로 돕는 풍조를 보였다.
광주시서구양동의 곡물가게인 한평상회주인 이기철씨(35)는『간혹 평소보다 많은 양곡을 사가려는 주민도있으나 어려운때일수록 함께 나눠쓰자고말하면 미안해하며 조금씩 사갔다』고 말했다.
북구유동106의4「코스코·슈퍼마키트」주인이영규씨 (27) 는『이번사태로물건이 동이날줄알았는데 그렇지않았으며 사재기는 커녕 평소보다 질서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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