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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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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언뜻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전략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패륜 공천’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격한 공천 파동으로 한바탕 추한 모습을 보인 탓에 당에서 공천한 후보자는 결국 그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되었고, 기왕 그렇게 된 참에 국회 재입성이 절박한 소수당 후보에게 그 지역을 양보하고 대신 좀 더 승산이 높은 다른 지역에서는 그들로부터 양보를 받아 단일화를 이뤄낸다.

 그 과정에 당 지도부가 직접 나서면 정당 간 ‘담합’이니 혹은 ‘서울에서 후보자도 못 내는 정당’이니 하는 비판을 받을 수 있으니 당 지도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후보자 개인이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화를 이룬 것으로 하자.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지도부의 선거 전략은 이렇게 진행되었고, 그 결과 야권은 의도한 대로 수도권의 중요한 세 지역구에서 단일화를 이뤘다. 정의당은 노회찬 후보에게 기회를 줄 수 있어 만족스러웠고, 새정치연합은 접전이 예상되는 수원의 두 지역구에서 정의당으로부터 양보를 받아 냈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 눈앞의 선거 승리가 중요하고 그 때문에 정당 간 연대를 이루는 일이 필요하다고 해도 이번 단일화는 ‘꼼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지, 왜 단일화를 이뤄야 하는지 최소한의 명분이나 원칙조차 제대로 내세우지 못했다. 더욱이 새정치연합의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는 동작을 기동민 후보의 사퇴 소식을 듣고 ‘안타깝다’며 마치 남의 집 일에 대해 말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당 안팎에 큰 논란을 일으키며 무리하게까지 공천을 준 자기 당 후보가 사퇴하기로 한 중요한 결정을 이들이 정말 몰랐다면 지도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일 테고, 알고 있었는데도 모른 척했다면 그들이 보기에도 이번의 단일화가 떳떳하고 당당하지 못한 일이었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야권의 후보 단일화 시도를 수도권에서 새정치연합이 전패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새정치연합의 요즘 처지는 한심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세월호 사태 처리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 유병언 검거 실패에서 보여준 현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잇단 인사 실패 등에서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폐쇄적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분노가 가득 차 있는 이때에, 명색이 대안 세력이라는 새정치연합이 재·보궐선거에서 손쉬운 승리는커녕 전패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면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근본적으로 당에 무엇이 문제인지 그 원인을 찾아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러한 고민이나 자기 변화에 대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새정치연합은 한때 기대감을 주었던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이 새 정치를 명분으로 만든 정당이다. 그러나 창당 후 새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개혁에 대한 최소한의 움직임도 보이지 못했다. 지금의 새정치연합의 모습이라면 현실에 안주하는 그저 또 다른 ‘보수적인’ 기득권 정당의 하나일 뿐이다.

 당장은 투박하고 우직해 보여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정치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것은 결국 명분과 원칙,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실현하려는 진정성이다. 그 진정성이 과거 어려웠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도 야당을 버텨내게 하는 힘이었고,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저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정성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오만과 잔꾀만이 보일 뿐이다.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이 싫다면 우리밖에 선택할 곳이 없지 않느냐는 오만이 야권 단일화에 깔린 의도이기 때문이다.

 퇴근 길에 탄 택시 안에서 기 후보의 사퇴 뉴스를 라디오로 들었다. 그걸 듣던 백발의 택시 기사는 못 참겠다는 듯이 “제대로 국민을 갖고 노는군”이라 말하며 장탄식을 했다. 감추려고 해도 이게 민심이니 어쩌겠는가. 마땅한 원칙도 명분도 없고, 그조차도 눈가림으로 국민을 속이려던 이번 단일화가 새정치연합 당 지도부의 의도대로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당 지도부의 뜻대로 단일화로 이번 선거에서 한두 석 더 얻게 될지도 모르지만, 새정치연합에 이번 재·보궐선거는 이미 패배한 싸움으로 보인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몰되어 그보다 훨씬 소중하고 중요한 정치적 진정성과 신뢰에 상처가 났기 때문이다. 야당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이번 재·보궐선거의 성적과 무관하게 긴 안목에서 새정치연합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실존적인 질문일 것 같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