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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휴가, 여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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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평균 객실 점유율 평균 80~90%. 이용객 상당수는 가족이나 친구끼리 온 서울 사람. 서울 도심 속 특급 호텔이 아니라 서울 근교의 유명 브랜드 호텔 얘기다. 롯데시티호텔 김포공항(롯데 김포), 신라스테이 동탄(신라 동탄),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서울 판교(메리어트 판교), 쉐라톤 인천호텔(쉐라톤 인천) 말이다. 2009년 쉐라톤 인천이 들어선 이후 롯데 김포(2011년)와 신라 동탄(2013년), 메리어트 판교(2014년)가 잇따라 문을 열었다. 모두 강남에서 자동차로 30분에서 1시간여 걸리는 외곽에 있다.

 야외 수영장에서 짧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호텔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산·제주처럼 휴양지에 있는 리조트도 아닌데 왜 주말마다 사람이 몰리는 걸까. 여유를 중시하는 사람이 늘어난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여가는 힘든 노동이었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는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기파랑)에서 “시간이 곧 돈이라는 금언은 여가시간에도 적용된다”고 말한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진정 휴식일 텐데, 재밌게 놀아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남은 휴식마저 빼앗긴다”는 것이다.

 꼭 비행기 타고 떠난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주말에 서울 근교 워터파크나 놀이공원에 가서 하루 종일 놀겠다고 새벽부터 눈 비비고 일어나서는 늦은 저녁에 피곤한 몸을 겨우 이끌고 집에 온 경험, 아마 다들 있을 거다. 하지만 시간 대비 최대한 재미를 뽑겠다고 몸을 혹사시키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쉬엄쉬엄 즐기겠다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도심 외곽 특급호텔의 주요 고객이다.

 느긋하게 집에서 출발해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주변 맛집에 갔다가 호텔에서 하룻밤 푹 쉬고 다음날 쇼핑까지 여유있게 마치고 돌아오는, 과거엔 호텔에 돈 쓴다는 이유만으로 낭비로 치부됐을 일정으로 주말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또 놀이공원 등 유명 관광지가 없더라도 순전히 쇼핑을 위해서만 1박 2일 일정으로 호텔 스테이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충훈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주말에 복잡한 도심을 떠나 서울 근교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젊은층이 이 지역 호텔 패키지 상품을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김호경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객실운영팀장 “실내외 수영장도 없는 호텔에 왜 묵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들은 호텔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여유를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엔 이런 수요가 있어도 묵을 만한 마땅한 호텔이 없었다. 하지만 유명 호텔 체인이 잇따라 생겨 이런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쉐라톤 인천이 특1급인 것을 비롯해 모두 특2급이라 호텔의 수준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도심 속 특급호텔에 비하면 가격은 싸다. 예컨대 쉐라톤 인천 여름 패키지는 1박에 18만4000원(조식2인 포함)부터 시작하지만 서울의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은 25만원(조식2인 포함)부터 시작한다. 특히 특2급인 나머지 호텔은 모두 룸서비스와 발레 주차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 10% 봉사료도 없어 비용이 더 저렴하다. 메리어트 판교는 같은 메리어트 계열인 JW메리어트 서울(특1급)과 비교하면 주말 객실요금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송중구 롯데 김포 총지배인은 “유니클로·자라 같은 SPA브랜드가 인기를 끄는 데서도 알수있듯 실속 있는 근교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정병우 JW메리어트 서울 호텔 마케팅 이사는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은 낮춘 실속형 호텔이 속속 생기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며 “최고급 호텔을 찾던 기존 고객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주머니가 얇은 젊은층까지 호텔로 유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정 기자 asitwere@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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