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관찰관 1인당 124명 담당, 호주 7배 … "밤 늦게 나가 놀지 말라" 5분 면담하고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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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뭐 했니? 누구 만났어?”(보호관찰관)

 “그냥 학교 다녔어요. 친구들 말고는….”(황진우군·17·가명)

 “밤 늦게 나가 놀면 안 된다. 사고 치지 말고.”(보호관찰관)

 “네.”(황군)

 7일 오후 3시 서울의 한 보호관찰소에서 진행된 황군과 보호관찰관의 면담 내용이다. 황군은 스마트폰 절도와 무면허 운전 등 혐의로 지난해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올 초부터 매주 한 차례 보호관찰 면담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 버스 등으로 40분 거리인 보호관찰소에 가서 5분 면담하고 귀가한다.

 A4 용지 1장짜리 ‘생활보고서’를 작성하고 ‘수사기관 조사 받은 적 있느냐’ ‘학교에서 문제는 없었느냐’는 등 몇 가지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식이다. 면담은 사실상 황군에게 보호관찰 처분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황군은 야간 외출금지 조치도 거의 지키지 않고 있다. 법에 따라 지난 3개월간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외출을 할 수 없었다. 황군은 “보호관찰소에서 집으로 확인 전화를 거는 시간만 잘 맞추면 얼마든지 외출이 가능하다”며 “면담 시간을 제외하면 제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이렇게 방치되는 게) 불안하다”고도 했다.

 재범 방지 목적으로 시행 중인 소년보호관찰제의 현실이다. 1989년 도입된 이후 25년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보호관찰소에는 ‘청소년 상담 매뉴얼’이 없다. 면담 시 심리상태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동안 성인 범죄자 매뉴얼을 그대로 써 왔다”며 “내년 초께 청소년 매뉴얼을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고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호관찰관 1명이 담당한 성인·청소년 보호관찰 대상자는 124명으로 호주(17명)의 7.3배에 달한다. 영국(25명)·일본(43명)·미국(46명)과 비교해도 훨씬 많다. 올해 법무부 예산(2조6801억원) 중 보호관찰 분야 예산은 1202억원(4.5%)이다. 인력과 돈이 부족하다 보니 ‘야간외출금지’ 확인은 자동음성 통화로 한다.

 전국 1412명에 달하는 보호관찰 담당자 교육 예산은 올해 2억700만원뿐이다. 1인당 14만6000원꼴이다. 이 돈으로 새로운 심리상담 방법 등을 교육하기에는 태부족이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는 “우리의 소년보호관찰제는 교정·교화 기능보다 ‘준형사 처벌’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동국대 박병식(법학) 교수는 “이탈리아는 보호관찰관 1명이 20명을 담당하는 데 한 달에 한 번씩 이들의 집을 반드시 찾아 상담한다”며 “비행 청소년들에게 부족한 대화의 기회를 많이 주고, 주변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위성욱(팀장)·신진호·최경호·최모란·윤호진·이정봉·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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