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심장·피 … 나를 닮은 인조인간, 생체공학이 장애 의미까지 바꿔놓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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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마이어 교수(오른쪽)와 그의 얼굴을 본따 만든 인조인간. [사진 데일리 메일]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빼닮은 누군가와 마주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더구나 그 상대가 팔다리는 물론 심장·기관지·혈액까지 온통 인공장기만으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이라면. 베르톨트 마이어 독일 켐니츠공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말 끔찍했다(It was so terrible)”고 말했다. 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의(醫)공학 전시회 ‘바이오닉테크 2014’ 강연 뒤 인터뷰에서다.

 마이어 교수는 지난해 영국의 한 TV가 만든 다큐멘터리 ‘인조인간을 만드는 방법(How to build a Bionic Man)’에 출연해 세계적 화제가 됐다. 전 세계 18개 대학·기업이 만든 최첨단 인공장기를 한데 모아 최초의 ‘완전한 인조인간’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는데 인조인간 얼굴 모델이 그였다. 실제 의료용 인공장기만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인간형 로봇을 뜻하는 ‘사이보그’를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실험이었다. 제작비는 총 64만 파운드(약 100만 달러·약 11억원)가 들었다. 이 때문에 완성된 인조인간은 옛 인기 SF드라마 ‘600만 불의 사나이’에 빗대 ‘100만 불의 사나이’라고 불렸다.

 마이어 교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계기로 두 가지를 꼽았다.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자란 점, 왼손 없이 태어나 인조인간과 같이 다섯 손가락이 제각각 움직이는 생체공학 의수(義手)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나름 적임자였다는 거다. 하지만 그는 “인조인간이 내 얼굴을 본떠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나 아닌 ‘가짜(fake)’ 나를 만들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가 사용하는 의수는 실제 사람 손과 다른 회색빛이다. 의수란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최대한 실제 손과 비슷해 보이게 만들어지는 여느 의수와는 딴판이다. 마이어 교수는 “요즘 아이들은 내 손을 보고 ‘쿨하다’고 한다”며 “생체공학이 장애의 의미까지 바꿔놓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100만 불의 사나이’ 시대의 윤리적 고민도 털어놨다. “부유한 사람만 이런 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려도 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머지않아 인공장기가 자연 장기의 성능을 뛰어넘는 시대가 오면 스스로 멀쩡한 장기를 바꾸려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며 “지나친 기술 낙관주의보다는 생체공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꼼꼼히 짚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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