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외제품의 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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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연말 일본에선 가짜 외제품 사건으로 큰 소동을 빚었다.
일본국민 숭앙의 표상인 일본천황의 「프랑스」제 「에르메스·넥타이」가 가짜였다는 것이다.
일본황실의 단골납품업체인「미쓰꼬시」(삼월)백화점에 가짜 외제품이 대부분이라는 소문에 따라 사직당국이 조사에 나선 결과「에르메스·넥타이」의 경우 1백26개중 3개만이 진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

<일천황의 넥타이소동>
그런데 천황이 연례적인 신정기념사진에서 매고있는 것이 바로 이「에르메스·넥타이」 로 「미쓰꾜시」측에선 「그것만은 진짜」라고 주장하지만 진짜일 확률은 42분의 1밖에 안돼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심상찮은 입방아를 찧어댔고 「미쓰꾜시」사장의 사임압력까지 일어났다.
최근 한 일본인은 동경중심지 번화가에 있는 제국 「호텔」 옆 「인터내셔널·아케이드」에서 2만5천「엔」을 주고「프랑스」 제 「셀린」 팔목시개 1개를 샀다.
산지 며칠 안되어 시계가 고장이 나서「셀린」일본대리점에 갖고 가니 「프랑스」기술자는 『이 시계는 견본(싯가40만「엔」)으로 12개만 일본에 가져왔을뿐 아직시판되지 않고있는「모델」인데 어떻게 이런 가짜가 나올수 있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개인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 일본국민들도 의래품에는 사족을 못써 가짜소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에는 일부 상류층이나 이름있는 연예인들이 외제품을 쓰는줄 알았는데 제 직장동료들드 「뒤바리」「FP브롱」 화장품에다 희한하게 생긴 잠자리안경(외제라 뻐기며)을 쓰고 다닌다』며 구로공단의 K양(22·H양행 봉제부)은 부러워한다.
그러나 문제는 귀부인이건 여공이건 간에 이들이 진짜라고 믿고 사는 유명상표 외제품의 상당수가 가짜라는 사실이다.
명동「유네스코」 회관에서「사보이·호텔」에 이르는 일류 양품점 골목-I.
『고급의제품의「메카」』로 알려져 있는 이 골목길에는 진짜보다 가짜가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K양품점의 L양(23) 은 『아예 국산상표를 eP어버리고 손님에게「통관을 위해 그랬다」 고 말하면 오히려 의심하지 않고 잘 사가기까지 한다』 고 털어놓았다.
흔히 도용되는 의국상표는「이브·생·로랑」 「셀린」 「크리스티앙·디오르」「피에르·카르댕」「구치」등등….

<비쌀수록 의심안한다>
물론 이들 양품점엔 15만원 이상가는 열쇠고리무늬의 「셀린」 T「셔츠」 . 50만원이상가는「루이·비통」 「핸드밴」.2백만원에서 4백만원까지 홋가하는 외제 「밍크·코트」등 진짜 외제품도 있다.
외제물품은 가짜라도 비싸야 잘 팔린단다.
외국에서 수입하여 P상사에서 만든 국산(?) 「밍크·코트」가 1백4O만원이고 명동 「살롱」의 마춤복 한벌에 30만원에서 1백만원까지 하는 판이니 비록 가짜지만 외제유명상표의류를 싼값에 부르면 오히려 가짜(?)로 의심받을 지경이다.
명동에서 양품점을 하는 K여사는 『중년부인에게 l분에 10여번이상 사모님이라 부르며 유명배우와「탤런트」가 얼마전 사간것이라고 말하면 손님은 대개 수표1장을 내놓고 군소리없이 사간다』고 했다.
외제품을 찾는것은 남자도 마찬가지
5만∼15만원하는 「가르체」「던힐」「뒤퐁」등의 외제 「라이터」에 「피에르·카르댕」혁띠만 찾는다.
국내 외제물품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사치품인 관계로 현지가격보다 몇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외제물품이 국내에 반입되는 경로는 항공과 해상(78년42·2%)이 주종을 이루고 그다음이 국내(PX등)에서 유출되는 것으로 대부분이 불법적으로 들어오는것.
지난 한햇동안 관세청은 외제품 단속에서 7천6백55건을 적발, 8억5천만원어치 상당의 외제품을 압수했다.
이는 77년(6천6백86건에 11억7천만윈)에 비해 건수는 14·5%가 증가한 반면 금액은 30·5%나 줄어든 것인데 이는 지난해 정부의 수입자유화조치에 마라 외래품밀반입이 감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품목별로는 장신용품이 23·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밀반입되는 외제물품의 대부분이 사치성인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계류(17%), 의류(8·6%), 식료품(6·6%)순으로 되어있다.
관세청의 한 관계자는 『PX를 통한 외제품유출이 줄어든 대신 APO(미군사우편)를 통한 외제품반입이 부쩍 증가하는 추세(78년 11· 4%차지) 에 있다』며 『한국계미군이 부임하면서 7백만원짜리 고급전축등 많은 물건을 가져와 유출되는것도 새로운 골칫거리』라고 말했다.

<무엇이 기준이 되는가>
늘어나고 있는 APO「루트」를 보면 이렇다.
미군과 친한 사람, 또는 미군과 결혼한 사람이 미군의 이름으로 미국본부나 제3국의 PX에 물건을 주문한다.
「캐털로그」를 보고 국내 PX에 없는것, 들여와서 비싸게 팔 수 있는것을 골라 주문하기 때문에 들여온 후의 판매는 식은죽 먹기다.
주문품은 가구에서 장신구까지, 전축에서 침대보까지 광범하다.
물건을 찾으면 개인적인 줄을 타고 살사람을 찾아 집에까지 물건을 옮겨다 준다. 상점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철저히 비밀이 보장되는 셈이다. 값도 원가에 비해 엄청나게 비싸다.
거래가 공개적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에 기준이 없고 같은 물건도 값이 들쑥날쑥이다.
이런 물건들을 「값」에 상관없이 사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몇년전에는 『연탄을 안쓰고 「보일러」를 때는 사람』 이 「특수」의 기준처럼 되어 약4만명쯤 될것이라는 추산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 기준이 맞지않는것 같다. 새로운 기준으로 『자가용차를 가진사람』 을 잡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오늘의「특수」 층은 13만명쯤 된다고 봐야할지….
김영모교수 (중앙대·사회학)는 『미국에선「밍크·코트」를 입고「슈퍼마키트」에 가는 가정주부는 볼 수가 없다.
남들 몇달봉급에 해당되는 돈으로 외제품을 가볍게 사는 것은 큰노력없이 투기나 저임등으로 쉽게 돈을 벌었기 때문』 이라며 사람들이 외제품만 찾는것이『자기자신을 내세우려는 과시욕과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사회병리』라고 풀이했다.<한월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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