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내 뒤엔 동료가 있다 원 팀 원동력은 믿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대표팀에서 낙마한 이동국은 독일에서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동료를 응원해 감동을 안겼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김진수(21·호펜하임·작은 사진)가 비운의 선수다.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발목을 다쳐 꿈을 미뤘다. 그러나 김진수는 팀 정신을 잃지 않았다. 13일 독일 분데스리가 호펜하임 이적을 확정 지은 김진수가 응원 메시지를 중앙일보에 보내왔다.

정리=송지훈·박린 기자

안녕하세요, 형님들. 지금쯤 지구 반대편에서 월드컵 준비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계시겠죠. 저는 호펜하임 홈구장 라인 네카 아레나에 있어요. 니가타(일본)를 떠나 독일 호펜하임에서 새 출발합니다. 알렉산더 로즈 호펜하임 감독님을 만났는데 “공격적인 수비가 돋보이고, 발도 빨라 매력적”이라고 칭찬하셨어요. 분데스리가에 데뷔하면 어떨까, 골을 넣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요. 사실 브라질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고 호펜하임과 계약하기 전까지 매우 심란했어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랐어요. 잊으려 해도 다시 생각나고, 월드컵을 보면 또 생각났어요.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게 한국팀 장점

 지난달 28일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형들 방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렸잖아요. 그때 정말 큰 힘을 얻었어요. (구)자철이 형, (이)근호 형, (곽)태휘 형은 아무 말 없이 제 어깨를 두드려 주셨죠. 4년 전 남아공 월드컵 때 (막판 탈락이라는) 아픔을 겪었던 그 형들은 ‘괜찮냐’는 위로의 말도 해주기 힘드셨던 거 알아요. 홍명보 감독님도 저를 많이 배려하셨어요. “못 간다”고 단정지어 통보하지 않고, “아쉽게 됐다”는 표현을 쓰셨죠. 그 표정과 목소리에서 선수들을 위하는 진심이 느껴졌어요. 홍 감독님이 부임하신 뒤 거의 1년간 대표팀과 함께했어요. 매 순간마다 ‘원팀(one team)이 바로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어요. 대표팀과 함께하는 동안 ‘경기장에서 내가 뚫려도 내 뒤에 동료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원팀 정신 덕분에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었죠.

 형님들, 혹시 제 카카오톡 배경사진 보셨나요. A매치 후 제가 (손)흥민이를 안아주는 장면이에요. 흥민이는 제가 대표팀에 적응하는 데 큰 힘이 돼 줬어요. 흥민이는 대표팀이 미국 마이애미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날에도 전화를 걸어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다. 내가 탈락한 것처럼 가슴 아프다”고 위로해 줬어요. 제가 올린 사진에는 ‘난 괜찮다. 힘내자’란 의미를 담았죠. 사실 사진이 멋있게 나오기도 했고요. ▶▶ 흥민이만큼 (김)신욱이 형도 제가 배울 수 있는 존재예요. 근데 제가 없으면 같이 기도할 사람이 없을 텐데 걱정이 되긴 하네요. ▶▶ 흥민이도 신욱이 형도 매 순간 발전하는 선수들이니 잘해낼 거라 믿어요.

같은 포지션 윤석영·박주호 형 믿어요

 경쟁자 이전에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던 (윤)석영이 형과 (박)주호 형에게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석영이 형, 파주에 작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걱정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형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에요. 힘내요.

 저 대신 대표팀에 합류한 주호 형이 ‘난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진수는 불운을 딛고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인터뷰 기사를 봤어요. 형, 전 괜찮아요. 저로 인해 부담 갖지 마세요. 형은 분데스리가 최고의 왼쪽 풀백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어요. 함께한 기간은 짧았지만 제가 본 형은 정말 든든했어요. 호펜하임 입단 발표가 난 뒤 가장 빨리 연락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형들은 대한민국 왼쪽 풀백 중에 가장 잘하는 두 명이에요. 누가 그라운드에 나가든지 국민은 형들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내시고, 다치지 말아요. 꼭 이기고요. 다른 형들도 남모르는 노력과 고생 끝에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서게 됐는데, 그만한 보답이 있을 거라 믿어요. 제 몸은 독일에 있겠지만, 마음만은 그곳에서 대표팀과 함께할 거예요. 같이 마음 졸이며 기도할게요. 전 대한민국을 믿습니다. 브라질에서도 꿈은 이루어집니다. 대한민국 축구 파이팅!

- 호펜하임에서 ‘원팀’의 막내 진수 드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