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관리 통합 추세인데 … 안행부·방재청 10년째 암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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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대응 과정에서 정부의 가장 기초적인 재난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생생하게 지켜봤다. 이에 따라 정부부터 관련 체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부처 간 재난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국가안전처’ 신설 방침을 밝히면서 논의가 무성하다.

 그러나 재난관리 시스템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자칫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66년간 계속해온 시행착오를 답습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재난관리는 미 군정청 시절 농무부 토목국이 맡았으나 정부 수립 이후 내무부 치안국과 건설국으로 넘어갔다. 이후 경제기획원·건설부·내무부·행정자치부·소방방재청으로 메뚜기 뜀뛰듯 왔다 갔다 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재난관리 조직은 공직사회에서 찬밥 신세였다.

 그러나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와 태풍 매미 참사를 겪으면서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사상 처음 일원화됐다. 청와대에 위기관리센터가 신설됐고 대통령이 의장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재난을 포함한 국가 위기상황의 조정·통제 기능을 담당했다. 2004년엔 재난관리 전담기관으로 소방방재청을 신설했다.

 대통령이 직접 재난을 챙기자 공무원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때부터 말로는 국민 안전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재난관리 주도권을 놓고 암투를 벌였다. 실제로 2004년 소방방재청 신설 이후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의 주도권 쟁탈전이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전임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대부분 부정하는 분위기를 타고 행정자치부에서 행정안전부로 이름을 바꾼 내무 관료들은 안전 관련 조직의 몸집을 대폭 불렸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부처 이름까지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꿀 정도로 대통령이 안전을 강조하자 안행부 관료들은 각계 전문가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지난해 6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소방방재청이 관장하던 인적재난을 안행부로 가져가고 소방방재청은 자연재난만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방재학회장인 정상만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안행부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을 각각 소방방재청과 안행부로 이원화한 것은 복합 재난에 대비해 재난안전 관리기능을 통합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행부 관료들은 “주민 생활과 밀접한 자치형 소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옥상옥(屋上屋) 조직인 소방방재청을 없애고 안행부가 안전관리 업무를 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세월호 초기 대응을 잘못하면서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안행부 간부들은 노란 재킷(비상근무 때 공무원들이 입는 옷)만 입었을 뿐 현장은 뭐가 뭔지도 잘 모른다는 사실이 세월호 수습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안전처 신설 방침이 발표되자 안행부와 소방방재청의 주도권 다툼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이번 기회에 차관급의 설움을 벗고 장관급으로 격상돼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법안 발의권도 행사하길 바라고 있다.

  정상만 교수는 “공무원들의 이해관계와 주도권 다툼을 떠나 국민 안전을 보장할 일원화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세정·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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