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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칼럼] 惡의 평범성 보여준 이준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2호 30면

세월호 선장 이준석에게 타이태닉호 선장의 전범(典範)을 바랐던 것은 착각이었던 것 같다. 그는 여전히 “잘 먹고 잘 자고 있다”고 한다. ‘죄의식’이니 ‘사회적 책무’니 하는 말은 그에겐 사치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뭘까? 자신의 주장처럼 ‘1년 계약의 견습 선장’이란 비루함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마저 없애버린 것인가. 아니면 ‘악(惡)이 내재화(內在化)된 인간의 계산된 악마적 범죄’인가. 세월호 탈출 이후 보여준 그의 지극히 평범하고 덤덤한 언행은 주위를 당혹케 한다.

사건 발생 초기, 나는 이준석의 태연함을 보고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했다.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의한 살인 혐의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법조계 일각의 주장에 동의했다. 고의성이 응축된 범법행위로 생각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처럼 ‘세월호의 악마(Evil of the Sewol)’라는 인식을 공유한 채 그의 악마성을 입증하기 위한 행적 추적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일상은 평범한 시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항 전날 이 선장을 만났다는 인천여객터미널의 70대 경비원을 비롯한 몇몇 지인들은 “그냥 보통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출항 전날 술에 만취했거나, 평상시 세상을 향한 분노를 내뱉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은 깨졌다.

그의 집이 있는 부산으로 출장 간 취재기자가 전한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코올 또는 도박 중독, 정신병 같은 특이한 전력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부인과도 평범한 삶을 이어왔다고 한다. 광신도들이 모인 사교(邪敎)집단과도 크게 관련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이준석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왜 했을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책이 그의 언행과 인식에 대해 힌트를 준다. 유대인 출신의 정치철학자 핸나 아렌트(1906~75)가 지은 이 책은 나치 전범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 과정과 이를 통한 사회병리를 다루고 있다.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이히만은 당시 재판에서 “그 일은 그냥 일어났던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를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들은 “내 상태보다 더 정상이다” “병리학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에 근거해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기존의 범죄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대한 개념을 주장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학살하면서도 ‘생각의 무능력함(inability of think)’으로 인해 책임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하는 ‘사고력의 결여’로 해석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르자면 이준석 또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결과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능인이 된 뒤 모든 것이 무감각해져 버렸다”는 한 선장의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배만 몰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의 문을 닫아버렸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의 경우처럼 ‘악의 평범성’에 젖어들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그와 함께 탈출했던 조타수는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구조 매뉴얼을) 지킬 상황이 되지 않았다. 난 당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해경 간부는 “80명을 구조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고도 했다. 그런 막말 속에서 ‘악의 평범성’이 담겨져 있는 건 아닐까. 악과 평범함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단어의 조합이 “악은 우리 생활 속에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아 섬뜩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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