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 용휘씨 "대학, 꼭 스무 살에 가란 법 있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2009년 9월 당시 A제약회사 입사 5년차 사원이던 안소라(28·여)씨.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시절 안씨는 공부 잘하는 오빠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에도 빠듯했던 집안 형편을 감안해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서울 성덕여상을 선택했다.

 그러나 직장 생활 하면서 서러움을 많이 당했다.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대졸 신입사원이 “소라씨”라고 부르며 반말을 했다. 대학을 나온 회사 선배가 안씨와 업무로 부딪친 뒤에 “대학도 안 나왔으면서”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고졸 출신이 승진에서 불이익 받는 사실을 알았을 땐 대학을 가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러던 5년 전 어느 날 고3 시절 담임교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에 다닐 수 있는 ‘선(先)취업 후(後)진학’ 전형이 생겼다”고 알려주면서 도전해 보라고 권했다. "선생님의 제안을 듣고 당시 새로운 길이 열렸다 싶어 가슴이 뛰었다”는 안씨는 선취업 후진학 전형을 신설한 건국대 신산업융합학과에 도전해 합격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를 필요도 없었고 고교 내신과 면접을 반영해 정원외로 선발됐다.

 그런데 뜻밖의 장벽에 부닥쳤다. 오후 8시 퇴근이 다반사였는데 상사는 “너를 봐주면 고졸 사원들이 모두 대학 가겠다고 할 것”이라며 대학 강의를 위한 주1회 오후 6시 퇴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안씨는 야간에 대학을 다닐 수 있는 지금의 직장(수인약품)으로 이직하고서야 대학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안씨는 지난 2월 졸업식에서 학장상을 받았다.

 #생보부동산신탁 부동산금융팀에서 일하는 권용휘(26·여) 주임은 중3 때 인문계가 아닌 서울 동구여상(현 동구마케팅고)을 선택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에 가더라도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막연했기 때문이다. 여상 졸업 후 연봉이 높고 복지제도도 좋아 대졸자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이 회사에 고졸로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근무 연차가 높아질수록 경영학이나 마케팅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직장 생활 1년 만에 수능 공부를 시작했으나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도 다닐 수 있는 대학 전형제도가 생기면서 건국대에 곧바로 지원서를 냈다. 권씨는 “ 사회 생활 해본 직장인끼리 모여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며 “지금도 취업을 먼저 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씨는 “꼭 스무 살에 대학에 가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안씨와 권씨는 고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곧바로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대학을 졸업해야 번듯한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깬 이들이다. 고교 졸업 후 취업부터 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3~5년 만에 대학에 입학한 사례다.

 이들의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가 2010년 시행한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덕분이었다. 산업체에서 3년 이상 근무한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졸업생을 대상으로 대학 학위를 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건국대·중앙대·공주대 등 3곳이 그해 신입생을 받아 올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런 전형은 이제 고려대·한양대·홍익대·숭실대가 참여할 정도로 확대됐다. 2015학년도 입시에선 4년제 대학 68곳, 전문대 18곳이 참여한다.

 정부는 이런 전형이 확대되면 스펙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풍토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 개선해야 할 점도 여전히 있다. 선취업 후진학 전형으로 졸업한 B씨는 “대학 측이 주간 과정을 비슷하게 바꿔 야간으로 옮겨선 곤란하다. 재직자들의 특성에 맞는 실용적인 강의를 개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졸 남성 직장인은 군 입대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명재 명정보기술 대표는 “마이스터고 졸업생 중 일부만 병역특례 혜택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졸 남성은 병역 때문에 대학에 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의 이해와 도움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선취업 후진학 전형으로 건국대를 졸업한 박아름(27·여) 한솔제지 수출팀 주임은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은 회사 임원이 퇴근 시간 조정과 야근 부담을 덜어줘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대학에서 배운 품질경영·재무관리 등을 회사 업무에 잘 활용한 덕분인지 올 초 입사 동기 중에 가장 먼저 승진했다”고 말했다.

김기환·신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