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역 강국" … 푸틴 도발한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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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날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 중 푸틴 대통령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러시아는 인접 국가들을 위협하는 지역 강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도 이웃 국가들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들을 힘으로 억압하거나 침략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러시아의 행위는 힘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함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느끼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건 영향력이 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밋 롬니 전 공화당 대선후보가 러시아를 ‘미국의 지정학적인 호적수’라고 표현한 데 대해 “러시아는 미국 국가 안보에서 ‘넘버 원’ 위협이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유럽행을 수행하고 있는 백악관 당국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러시아가 더 이상 특정 블록을 대표하거나 전 세계 이념 경쟁을 이끄는 과거의 소련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냉전시대의 소련과 달리 러시아는 단지 힘없는 이웃 국가를 위협하는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골목대장 역할을 하는 국가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보는 미국의 시선이 그만큼 불편하다는 뜻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행위를 이제 와서 무력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말해 크림 자치공화국을 우크라이나로 원상 복귀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러시아의 추가 도발을 우려하며 “러시아가 추가 행동에 나설 경우 러시아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러시아는 25일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달고 있던 마지막 군함인 기뢰제거함 체르카시를 접수했다. 전날엔 우크라이나의 기지였던 페오도시아 군 기지도 장악했다. 이로써 크림반도의 군사적 대치는 사실상 종료됐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이고리 테뉴흐 국방장관 대행의 사임안을 가결했다. 푸틴 대통령이 군사 행동을 취하는 과정에서 테뉴흐 장관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워싱턴·런던=박승희·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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