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푸틴 돈줄 '올리가르히' 자산 동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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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가 상대국의 ‘블랙 리스트’를 발표하는 등 제재 공방을 벌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러시아 제재조치를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는 국제사회가 원치 않는 길을 지금 가고 있다”며 “러시아가 긴장 완화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유럽연합(EU) 등과 함께 더 가혹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백악관은 20명의 러시아인과 은행 1곳을 추가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다고 밝혔다. 지난 17일의 1차 명단 발표에 이은 2차 명단이었다. 백악관은 이들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너 서클’이라고 규정했다.

 새 제재 명단에는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비서실)의 세르게이 이바노프 실장, 알렉세이 그로모프 부실장 등이 포함됐다. 주목할 건 겐나디 팀첸코 볼가그룹 회장,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철도공사(RZD) 사장, 유리 코발축 방크 로시야 이사회의장 등 기업인들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의 친구인 팀첸코 회장은 세계 4대 석유거래 업체인 군보르 등 에너지·운송 회사를 소유한 재벌로 재산이 150억 달러(약 16조원)에 이른다. 푸틴 대통령의 유도 파트너로 가스관 전문 건설회사인 스트로이가스몬타슈를 소유한 아르카디 로텐베르그와 동생 보리스 로텐베르그도 포함됐다.

 이들의 경우 미국이 사법권을 행사하는 지역에서 자산이 동결되고 여행도 금지된다. 미국의 개인이나 기업들도 이들과의 거래가 금지된다. 제재 대상 은행은 1990년대 초반부터 푸틴 대통령과 관계를 맺어온 데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의 사업을 지원하는 방크 로시야가 선정됐다.

 2차 제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노린 건 푸틴 대통령의 돈줄이다. 소치 겨울올림픽을 후원하며 푸틴 대통령과 가까이 지낸 올리가르히(신흥부호)가 대거 추가됐다.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는 이날 러시아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앞으로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경고다. S&P는 “미국과 EU의 제재로 러시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 감소, 자본 유출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추가 제재 발표와 신용등급 전망 강등 소식에 러시아 금융시장이 휘청거렸다. 한때 루블화 값은 0.7% 하락했고 러시아 주가 도 한때 2% 넘게 빠졌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 핵심인 석유·천연가스 무역은 건드리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군사 도발에 나서면 석유·가스 무역을 직접 제재할 수 있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시사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추가 제재에 맞서 러시아 외무부는 9명의 미국인에 대해 비자 발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백악관에선 대니얼 파이퍼 선임고문, 벤 로즈 국가안보부보좌관, 캐럴라인 애킨슨 국가안보부보좌관 등 3명이 포함됐다. 존 베이너 연방 하원의장(공화),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의회 인사들도 포함됐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서울=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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