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도전 박종석 "내 꿈은 이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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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패럴림픽에 참가한 박종석이 지난 8일 러시아 소치 알파인스키장에서 열린 활강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박종석은 12위를 기록했다. [소치=사진공동취재단]

2000년 8월. 전기기술자 박종석(47)은 8m 높이의 전신주에서 추락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끔찍한 사고는 그의 하반신을 앗아갔다. 척수장애 1급.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병상에 누운 그는 절망했다.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비쳤다. 재활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장애인알파인스키 대표팀을 이끌던 김남제 감독을 만난 것이다. 스키 국가대표 출신인 김 감독은 낙하산 사고로 장애를 얻은 뒤 장애인 스키로 방향을 바꾼 케이스였다. 김 감독은 박종석의 탄탄한 상체를 보고 좌식스키를 권유했다. 좌식스키는 척수장애나 뇌성마비 장애인이 앉아서 타는 종목이다. 운명처럼 스키를 접하게 된 박종석은 2006년 토리노 대회를 시작으로 이번 소치 대회까지 세 번이나 패럴림픽에 출전했다.

 혼자서 화장실 가기도 힘든 몸으로 스키를 타는 건 엄청난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공포와 다시 마주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추락사고로 장애를 입은 그가 시속 100㎞ 이상의 속도로 코스를 내려오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박종석은 “ 무섭긴 했지만 내려올 때 느끼는 희열이 대단했다. 또 코스를 통과하는 기술이 늘어날 때의 쾌감도 정말 크다”고 말했다.

 그가 전문선수가 된 건 2004년이었다. 어디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했지만 스키를 타고 세상을 향해 질주하는 행복 하나로 충분했다. 박종석은 “솔직히 멋모르고 덤볐다.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처음 출전했던 2006년 패럴림픽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며 웃었다. 당시 그는 대회전 30위, 회전 36위에 그쳤다. 장애인 선수들이 타는 모노스키 가격은 500만원에 이른다. 또 정기적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해 포인트를 따지 못하면 패럴림픽에 나설 수 없다. 개인의 힘으로 오래 할 수 없는 운동이다. 막무가내로 달린 그에게 행운이 따르기 시작했다. 하이원이 2008년 10월 국내 최초로 장애인스키 실업팀을 창단한 것이다. 덕분에 박종석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게 됐다.

 47세 나이에도 그는 계속 도전하고 꿈꾼다. 박종석은 “소치에 와보니 52세 선수가 있더라. 2018년 평창 대회 때 난 51세에 불과하다”라며 “ 6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나라 이규혁(36) 선수를 보며 참 부러웠다. 나도 최선을 다해 평창까지 내 꿈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일 활강 12위를 기록한 박종석은 주 종목인 회전(13일)과 대회전(15일)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소치=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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