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사정, 비정규직법안 끝장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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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노총이 국회에서 비정규직 입법 문제를 논의하기로 해 노사정 대화에 물꼬가 트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와 노사정 대표들은 6일 만나 국회-노사정 대화를 통해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해 내기로 했다. 실업과 비정규직, 일자리 창출 등 중요한 노사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노사정 회의가 8개월 만에 복원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4월 임시국회 기간 동안 실질적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타협안이 도출되길 기대한다.

현재로선 비정규직 법안조차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노조 측 입장을 수용하면 기업들은 20조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모든 업종에 비정규직을 허용하라는 재계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비정규직 양산으로 정규직 노조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결국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얼마나 최대공약수를 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지난해 주5일제 법안처럼 국회 주도로 입법이 강행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우려되는 사태는 비정규직을 볼모로 노사 간의 소모적인 힘겨루기가 재연되는 상황이다. 법안 통과를 4월로 고집할 경우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포기하고 전면 투쟁에 나서겠다고 예고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화하는 시늉을 하면서 파업 빌미를 찾고 있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부르기 십상이다. 재계도 대화에 응한 민주노총의 어려운 입장을 헤아려 마음을 열어야 한다.

비정규직은 대기업 노조의 횡포 때문에 생겨난 사회적 약자다. 노조가 기득권을 고집하면서 책임과 부담을 기업이나 사회에 떠넘겨선 안 된다. 정규직 노조와 기업이 한발씩 양보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일정 기간 정규직 임금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기업과 사회가 기금 조성에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진심으로 비정규직의 어려운 입장을 헤아린다면 노사정은 지금이라도 문을 걸어잠그고 타협을 시도해야 한다. 4월 말까지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