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끼리 훤히 알아 … 배 타고 나가려 하면 서로 알려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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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때론 섬을 빠져나가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익명을 원한 신의도 염전 인부의 넋두리다. 자포자기했다는 의미다. 그 말 그대로 신의도는 웬만해서 빠져나가기조차 힘든 섬이다.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40㎞, 뱃길로 두 시간 거리다. 하루 다섯 차례 오는 배를 타면 섬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원론적인 얘기일 뿐이다. 무엇보다 5~6개월 돈 구경을 못하는 인부들은 뱃삯조차 구할 길 없는 신세다.

 돈이 있다 해도 눈에 띄지 않고 항구까지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대중교통은 15인승 마을버스 2대와 택시 2대가 전부다. 사실상 인부들이 이용할 수가 없다. 게다가 주민들이 서로 훤히 알고 지내는 사이라 인부가 조금 멀리 갈라치면 곧 염전 주인에게 소식이 날아든다. 실제 염전 노예 구출 사건이 터진 홍모(48)씨 동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홍씨 염전에서 일하던 김모(40)·채모(48)씨가 탈출하려 했을 땐 이를 본 동네 가게 주인이 홍씨에게 알린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가게 주인은 50년 가까이 홍씨와 한 동네에서 살았다. 가게 주인은 “인부들에게 돌아가라고 타이르긴 했으나 홍씨에게 연락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원한 신의도 염전 주인은 “사실 우리도 소개업자에게 선금을 주고 인부를 데려오기 때문에 도중에 도망가면 손해”라며 “그래서 염전 주인끼리는 서로서로 알려주곤 한다”고 말했다.

무허가 소개업자도 탈출을 못하게 만드는 공포의 대상이다. 염전에 넘기기 전 인부들을 폭행하고 “탈출하면 가만 안 둔다”고 엄포를 놓는다.

 신의도에는 파출소가 하나 있지만 경찰은 염전 인부 인권침해 문제에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김봉암 신의파출소장은 “전엔 인부들과 면담해 인적 사항과 임금·처우 등을 적은 ‘관리카드’를 썼으나 인권침해 논란 때문에 약 3년 전부터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염전 인부 인권침해는 신고가 들어와야 처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신의도=최경호·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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