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과 기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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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기자본에 비해 부채자본이 많은 기업은 부실한 기업이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의 기업들은 자기자본의 몇배, 심지어는 몇 십 배나 되는 타인자본으로 부실경영을 일삼고 있는 예가 허다하다. 기업전체의 재무구조만 하더라도 기업의 부상자본비율은 자기자본의 부려 3배에 달하니 말이다.
흔히 말하는 부실기업이란 바로 이런 재무상태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기업의 상당한 수가 부실기업이고 부실기업이 아닌 견실 기업이 오히려 드문 형편이다.
이와같은 경향은 종래 재정·금융·외자 등 각종의 정책혜택을 누릴대로 누려 성장하여온 대기업일수록 더욱 심하다. 기업활동이 정상적이고 공정한 길을 걷고있다면 처음부터 과도한 부채자본의존화를 마다하였을 것이다. 정상적인 기업윤리로써는 그토록 많은 부채의 원리금을 갚을 재간이 도저히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들이 엄청난 빚더미 위에서 사업확장에 열을 올리어온 까닭은 일확천금의 폭리로 부채를 갚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만약 그렇다면 이들 부실기업은 처음부터 국민에 대한 폭리행위로 빚을 청산하려는 투기적 동기에서 기업활동을 벌여 왔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전혀 망각한 소위다. 폭리를 누리는 길이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서슴지 않고 감행하겠다는 의도가 그 속에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보다 좋은 것으로 보다 풍부하게 그리고 보다 싸게 공급해야 할 기업의 사회적 기능을 다하기에는 그 동기나 목적이 너무나 불순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업은 망쳐놓고 기업가가 사적 치부를 꾀하기 위해 부실기업을 꾸몄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부러 기업부실화의 길을 달릴 까닭이 없는 것이다. 실지로 우리는 기업으로서의 성공과 자본축적보다도 사적 치부와 호화생활에 영일이 없는 기업가의 군상을 많이 보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이러한 기업가들이야말로 기업과 사회에 기생하는 사이비 기업가들이다.
그러한 기업가일수록 기업의 공개화를 극도로 꺼리는 것이 통례이다. 기업의 사회성을 망각하고 사적 전유물인양 아는 것이 예사다. 기업의 재무구조충실화를 위한 직접금융방식으로서의 기업공개화나 기업이윤을 사회적으로 균형케하는 한가지 방도로서의 공개화는 애당초 염두에 있을 수 가 없는 것이다. 이들 부실기업가들은 기업을 가능한 한 비공개상태에 남겨둠으로써 스스로의 반사회적 행위를 감출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부실한 기업가는 망해도 기업은 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기업을 무능하고 부실한 기업가에 맡겨둘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기업을 부실하게 운영하고 그 사회적 책임을 못다 하는 기업가는 마땅히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다수 국민을 위한 기업의 문호개방과 유능한 기업가에 의한 기업경영정상화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물론, 부실기업의 공개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엔 어려운 과제다. 부실기업은 재무구조가 부실하기 때문에 공개되어야 하겠지만 또 부실기업이기 때문에 공개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기에 한꺼번에 공개화 할 수 없다면 우선 과도조치로서 정부가 책임을 지고 경영자를 대체 하든가, 또는 기업채무를 일단 정리하여 공개화를 위한 정지작업을 우선 꾀해야 옳을 것이다.
또 이와 동시에 부실기업의 공개화를 기화로 악덕무능기업가들이 사실상 은행융자로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일이 있어서도 또한 안될 것이다. 그것은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기업을 더욱 부실화하게 하고 기업공개화의 근본취지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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