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비상 … 오리 2만 마리 살처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17일 전북 고창의 한 종오리 농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오리를 살처분하고 있다. [뉴스1]

“입이 바짝바짝 마르네요. 생계와 직결되는 문젠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17일 전북 고창군 신림면의 종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했다는 소식에 농민 김모(60)씨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고창 지역에서 오리 1만 마리를 기르고 있다. 그는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나중 문제”라며 “당장 축사에 있는 오리들이 살처분 대상이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창 종오리 농장 시료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H5N8’형 고병원성 AI로 확진됐다. 고병원성 AI가 2년8개월 만에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가축질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상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고병원성 AI는 닭·오리 등 가금류에 치명적이고, 전염되기 쉽기 때문에 정부는 의심 단계에서부터 살처분에 들어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AI 발생 농장의 2만1000마리를 우선 살처분했다. 밀폐된 오리 우리에 이산화탄소(CO₂)를 넣어 질식시켰다. 전부 살처분하는 데 공무원 50여 명이 투입돼서도 12시간이 걸렸다. 반경 500m 내에 있는 농장의 가금류도 모두 살처분할 예정이다. 반경 10㎞ 이내에 있는 202개 농가도 경계대상으로 분류, 소독에 나섰다. 이들 농가에서 추가로 AI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살처분 대상이 더 늘어날 수 있다. 반경 3㎞에는 17개 농가가 가금류 81만5000여 마리를, 10㎞ 이내는 202개 농가가 304만 마리를 사육 중이다.

 같은 날 전북 부안 육용 오리 농가에서도 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고 농식품부는 밝혔다. 농가의 신고로 전북축산위생연구소가 농가를 확인한 결과 90마리가 폐사하는 등 AI 의심증상이 나타났다. 시료를 농림축산검역본부로 옮겨 검사 중인데, 고병원성 AI인지는 19일 오후쯤 확실해진다.

 정부는 AI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대비를 시작했다. AI는 보통 닭·오리 몸속에서 최대 21일의 잠복기를 거친 뒤 발병한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고창 AI 발생 농가에서 기르던 새끼오리 17만3000마리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새끼오리를 분양받은 농가는 24곳으로 충북 ·충남· 전북· 경기도 에 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은 비상 방역근무에 들어갔다.

 AI 발병 원인은 철새로 지목되고 있다. 겨울에 한국을 찾는 철새는 주로 중국·베트남·호주에서 날아오는데, 이들 나라에서 최근 고병원성 AI가 발병했기 때문이다.

 이번 AI 발병으로 한국은 2011년 9월 이후 유지해 온 ‘AI 청정국’ 지위를 잃게 됐다. 이에 정부는 닭고기 수출 감소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AI 발생으로 가금류 내수가 위축되지 않도록 홍보도 강화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75도 이상 온도로 5분간 조리하면 AI 바이러스가 모두 없어져 식품으로서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전주=권철암 기자, 세종=최선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