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중도로 가는데 여야 이념 더 벌어져 "정치가 갈등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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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의 정치는 국민 의식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이념 격차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야 의원들의 이념 간극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연세대 이재묵(정치학) 교수의 연구 결과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 심화는 일반 국민에게 폭넓게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라 정치 엘리트들에게 국한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중앙일보가 16대 국회부터 실시해 온 ‘국회의원 이념성향 조사’(0이 가장 진보, 10이 가장 보수)에서 16대 국회 때 1.7(한나라당 5.4, 민주당 3.7)에 불과했던 여야의 이념격차는 17대 국회 1.9(한나라당 5.4, 열린우리당 3.5)→18대 국회 2.4(한나라당 6.2, 민주당 3.8)→19대 국회 3.2(새누리당 5.9, 민주당 2.7)로 차이가 계속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9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이념 수준이 급격히 ‘진보화’(3.8점→2.7점)된 게 두드러진다. 같은 시기 여당이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면서 이념 수준도 다소 좌측(6.2→5.9)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야당의 변화폭이 워낙 커 양당의 이념 격차는 처음으로 3을 넘어섰다. 양당의 이념 격차는 경제 분야에선 2.2로 좁혀졌지만 외교안보 영역에서 3.9로 크게 벌어졌다. 19대 국회 들어와 종북·NLL 등 이념 논란이 확산된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반면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의 ‘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층과 민주당 지지층의 이념적 격차는 2.95(2004)→2.07(2007)→2.48(2008)→2.4(2012)를 보였다. 시간이 흘러도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민주당(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이념 성향만 놓고 보면 2004년엔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이념 성향이 3.51까지 진보 쪽으로 기울었지만 이후엔 4.13(2007)→4.38(2008)→4.6(2012) 등 꾸준히 오른쪽으로 이동해 중도를 뜻하는 5에 근접했다. 의원과 유권자 이념 자료를 함께 분석하면 2012년 기준으로 민주당 의원들의 이념 수준은 2.7이었지만 당 지지자들은 4.6으로 격차가 1.9였다. 새누리당의 격차는 1.1(의원 5.9·유권자 7.0)이었다.

 고려대 이내영(정치학) 교수는 “정치권과 유권자의 이념적 괴리가 커지면서 한국에선 정치 제도를 통해 이념 갈등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권이 국민의 이념 대립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 특별취재팀=정치부 김정하·권호·강태화·하선영·김경희 기자, 국제부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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