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업인 처벌, 봐주기도 과잉도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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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이 어제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과 그 아들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마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등으로 또 한번 무더기 구속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법원과 검찰은 대기업에 대한 엄벌 분위기로 치닫고 있다. SK그룹은 형제가 법정 구속됐고, LIG그룹과 태광그룹은 각각 부자(父子)와 모자(母子) 경영진이 처벌됐다. 나이나 건강상태도 가리지 않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건강이 악화된 가운데 재판을 받고 있다.

 돌아보면 이런 비극은 대기업들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20여 년간 대기업 총수들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모두 풀려났다. 이런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분노가 지난해 총선·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태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쩌면 최근 대기업 총수에 대한 예외 없는 ‘구속 기소-실형 선고’는 당연한 역풍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문제가 된 사안들은 대부분 4~5년 전에 한 번씩 불거졌던 일들이다. 당시 검찰은 제대로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은 채 덮었다. 이번에는 거꾸로 몰아치기식 압수수색을 하고, 몽땅 잡아넣어 실형을 때리는 정반대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또한 최근 심판대에 오른 기업들은 상당수가 이명박정부와 가까웠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하는 쪽에선 ‘보복 수사’나 ‘전(前) 정부 손보기’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재계는 납작 엎드려 있다. 본보기식 처벌과 전방위적인 세무조사, 강도 높은 일감 몰아주기 단속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 총수의 공백으로 해외 진출이나 신사업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러니 삼성과 현대차를 빼고는 주요 그룹의 상반기 매출액과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모조리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다. 사법 당국의 중용을 지키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것은 경제 생태계를 망치는 위험한 일이다. 대기업에 대한 ‘봐주기 수사’도 곤란하지만 과잉 처벌 역시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