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 치매, 약물 치료 땐 10년 이상 일상생활 문제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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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우 대한치매학회 이사장

치매는 사회적 질병이다.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한 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현재 52만 명 수준에서 2030년에는 치매 환자가 100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증 치매환자 A씨는 자신을 돌봐주는 며느리를 도둑이라고 신고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손가방을 숨겼다며 직접 파출소까지 찾아가 며느리를 잡아가라고 난리를 쳤다. 사실 그 손가방은 A씨 자신이 몇 해 전 낡고 쓸모 없다며 버린 물건이었다. 식탐이 심한 환자도 있다. 밥을 먹고 돌아서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또 밥을 달라고 한다.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먹고서는 값을 치르지 않는 일도 흔하다.

이런 문제는 결국 치매 환자 가족이 감당해야 한다. 치매 환자 가족은 심리적 부담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불면증·불안증 같은 정신질환을 호소한다.

경제적 지출도 만만치 않다. 치매 환자 한 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약 1968만원이다. 전체적으로 연간 10조3000억원을 지출하고 있다. 경증일 때와 비교해 중증은 9배나 더 많이 비용이 든다는 보고도 있다.

치매는 관리성 질환이다. 꾸준히 약을 챙기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나 집처럼 익숙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다. 치매는 인지기능에 장애가 있어 환경이 바뀌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치매 환자와 함께 생활하려면 관리 원칙을 세워 돌봐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보건체계도 적극 활용한다. 돌보는 사람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고 희생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도 과거와 달리 치매 환자가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치매가 어떤 특성이 있는지 정확하게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 치매 환자 B씨는 비교적 초기에 치매를 진단받았다. 증상도 가벼웠다. 하지만 약물치료를 제때 받지 않아 불과 3년 만에 상태가 빠르게 나빠져 현재는 혼자 움직이지 못한다. 치매를 치료할 때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중요하다는 점을 몰랐던 것이다. 치매는 관리만 잘하면 10년이 지나도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

실내 생활환경도 개선한다. 치매 환자는 집안에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위해 요소를 최대한 제거한다. 가스 밸브는 찾기 힘든 곳에 숨기거나 사용법을 까다롭게 바꾸는 식이다.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는 것을 고려해 문턱을 없애는 것도 좋다.

정부 역시 치매 종합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개인이나 가족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우선 치매 환자 돌봄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물론 이들에 대한 전문 교육도 병행한다. 주·야간 보호센터, 단기 보호센터 등 치매 관리 사회 인프라도 활성화한다. 이제는 가족뿐 아니라 정책·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때다.

한일우 대한치매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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