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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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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2013년 10월 23일자 31면>
한국사 교과서 오류 수정이 먼저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교육부가 지난 8월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을 통과했던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출판사와 집필진에게 모두 829곳을 수정·보완하라고 엊그제 통보했다. 교과서는 무엇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담아야 한다. 따라서 남북 분단의 책임이 남한에만 있는 것처럼 서술했거나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사실을 명시하지 않은 교과서는 사실 오류와 누락이라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성과를 깎아내리는 한편 북한 주민의 인권 실태, 3대 세습은 한 줄도 다루지 않은 교과서는 역사 기술의 균형성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각각 수정·보완되는 게 마땅하다.

 이러한 수정·보완은 교학사라는 우편향 교과서를 두둔하기 위한 것도, 나머지 교과서를 싸잡아 부실한 교과서로 몰고 가려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이 내년 3월부터 접하게 되는 교과서가 정확하게 쓰여 미래 세대의 역사 인식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일 뿐이다. 그런데도 일부 집필진이 교육부의 수정·보완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온당하지 않다. 한국사는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이지 저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선전 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을 노예화하는 데 쓰인 주체사상을 두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서술한 교과서가 버젓이 검정을 통과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 체제 선전용 자료가 교과서에 쓰이고 있는데도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위원회는 합격 도장을 찍어줬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교과서 검정 시스템을 수술해야 한다. 1년6개월도 채 안 되는 교과서 개발 기간을 좀 더 늘리고, 집필 기준 등을 좀 더 세밀하게 해야 하며, 검정위원의 수와 이들의 전문성을 좀 더 보강해야 한다. 보수·진보의 정파적 대립과 갈등이 한국사 교과서 검정·출판 과정에서 반복돼 소모적인 사회 분열로 확산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안 된다.

한겨레<2013년 10월 23일자 35면>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살리려고 ‘물타기’ 한 교육부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교육부가 21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해 829건의 내용을 수정·보완하라고 출판사들에 권고한 것은 교학사 교과서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물타기 꼼수’일 뿐이다. 교육부는 이제라도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을 취소해 사태를 빨리 마무리하기 바란다.

 교육부 권고 내용을 살펴보면 물타기 의도가 잘 드러난다. 교육부는 애초 객관적 사실과 표기·표현 오류만 잡아내겠다고 했다가 21일 발표 때는 서술상의 불균형과 국가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들 내용이 대부분 북한 관련 서술에 집중된 것을 보면 7종의 교과서에서 흠집을 찾으려고 기준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졸속 작업을 하다 보니 권고 내용이 틀린 것도 여럿이다. 게다가 교학사 외의 교과서에서는 오탈자까지 속속 짚어내 오류 숫자를 늘리려고 한 흔적이 뚜렷하다. 그럼에도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가 다른 교과서의 2~4배에 이른 것은 이 교과서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8월 말 8종의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검정심사에서 통과된 이후 논란이 집중된 것은 교학사 교과서뿐이었다. 이 교과서는 친일파의 행위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노골적으로 미화하는 등 역사 교과서로서 허용될 수 있는 자율성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많았다. 게다가 사실 관계가 잘못 표현되거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이 수백 곳 지적돼 교과서로서 수준 미달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다수였다. 그렇다면 국편의 검정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 교과서만 검정 취소하면 그만인데도 교육부는 굳이 8종의 교과서 전부에 대해 사실상의 재검정을 실시했다. 부실·역사왜곡 교과서 문제를 좌우 이념 논란으로 치환하려 한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과 새누리당 등 여권의 뜻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봄 ‘역사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불을 지른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때아닌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부의 이번 권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와 관련된 내용이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여권이 역사전쟁으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들이 나아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을 정통으로 삼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정치적 목적으로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역사 교과서 내용까지 바꿔버린다면 정권이 달라질 때마다 역사전쟁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국민에게도 불행이다. 교육부는 정권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기 바란다.

논리 vs 논리
역사 논쟁, 정쟁으로 변질 경계 … 교육부 조치엔 찬반 갈려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가르치는가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국가 정체성은 역사 기술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분란은 교육과정 개편 때마다 반복되다시피 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 초기에는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교과부(현 교육부)는 역사 기술이 좌편향됐다는 이유로 금성출판사를 비롯한 6종의 교과서에 수정 명령을 내렸다.

 불과 5년 만에 논란은 또다시 불거졌다. 이번에는 교학사 교과서가 문제가 됐다. 지나치게 우편향했고 기초적 사실관계의 오류가 많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 각계의 비판이 이어졌고,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수정·보완을 권고했다. 논쟁의 핵심은 교육부가 교학사뿐 아니라, 한국사 교과서 8종 모두에 대해 수정·보완을 지시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평가는 완전히 상반된다.

 한겨레는 교육부의 조치가 ‘물타기’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문제의 발단은 “친일파의 행위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노골적으로 미화하는” 교학사 교과서의 서술 방식이었다. 이는 “역사 교과서로서 허용될 수 있는 자율성을 벗어난 것”으로 검정을 취소해 버리면 된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서술상의 불균형과 국가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분석했다”고 하면서 역사 교과서 8종 모두를 검토한 것은 “부실·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를 좌우 이념 논란으로 치환”하려 하는 시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중앙일보는 교육부 조치에 동의한다. 교과서는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담아야” 하며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성과를 깎아내리는 한편 북한 주민의 인권 실태, 3대 세습은 한 줄도 다루지 않은 교과서는 역사 기술의 균형성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각각 수정·보완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한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주장 아래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뿌리 깊은 역사 논쟁의 핵심이 담겨 있다. 사회 지도층 가운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협력했던 인사가 적지 않다. 이들이 친일 혐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일본에 협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논지다. 독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다소의 희생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편다.

 여기에 대해 한겨레는 역사 논쟁에 있어 진보 측이 보이는 ‘논리의 정석’을 그대로 따른다. 이 점은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파 행위’ ‘독재를 노골적으로 미화’했다는 점을 적시한 점에서 잘 드러난다.

 중앙일보도 보수 측의 역사 논리를 오롯이 보여준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던 까닭은 좌우 대립과 북한의 위협 때문이었으며, 경제 성장과 민주화라는 결실을 제대로 부각시켜야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뚜렷하게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진보 측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성과를 깎아내리며’ ‘북한의 인권 실태, 3대 세습’ 등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물론 중앙일보는 “교학사라는 우편향 교과서를 두둔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거리를 둔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측면에서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서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지금의 역사 논쟁은 숱하게 벌어졌던 예전의 역사 논란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간 것이 없다. 한편에서는 친일과 독재 미화라고 상대를 공격하고, 다른 쪽에서는 국가 정체성을 위협한다며 상대를 비난한다. 이 논란이 해결될 가능성은 없을까.

 다행히 중앙일보와 한겨레는 각각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태도를 취한다. 한겨레는 지금의 역사 논쟁을 ‘때아닌 역사 전쟁’으로 평가한다. 중앙일보도 다르지 않다. “보수·진보의 정파적 대립과 갈등이 한국사 교과서 검정·출판 과정에서 반복돼 소모적인 사회 분열로 확산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지금의 역사 논쟁은 불필요한 정쟁이나 소모전의 성격이 짙음을 양쪽 다 인정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교과서 논쟁은 의미가 있다. 역사 교육은 살아 있는 토론의 과정이 돼야 한다.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잡는 데 있어 아직도 합의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입장이 하나로 모이는 데는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한국사 교과서 논란은 대한민국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앞으로 두 신문이 사설을 통해 합리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건설적인 토론을 나누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