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방 협진 인상적 … 러시아에 약침 보급 앞장설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러시아에 한의학 바람이 불고 있다. 침이나 뜸으로 통증을 줄이고, 손가락으로 맥을 짚는가 하면 사상의학에 맞춰 체질을 구분하기도 한다. 의료한류 범위가 성형외과·피부과·치과에서 한의학으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단순히 병원을 찾아와 한방치료를 받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현지 의료진이 직접 한의학을 배우러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달 25일 강동경희대병원 한방병원에 연수 중인 카밀라 루지나(27·여·사진)교수를 만났다. 그는 러시아 최대 철도회사인 철도공사 소속 모스크바 제1철도병원 한방클리닉을 총괄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러시아 전역 250여 개 철도병원을 운영·관리한다.

한국인은 한국 전통의학인 한의학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해외에서 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루지나 교수는 “가늘고 얇은 침을 머리·얼굴·목·팔·다리에 꽂아 치료하는 것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본래 모스크바 의과대학에서 신경과를 전공했다. 하지만 중국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동양 전통의학에 흥미를 느꼈다. 루지나 교수는 “어머니는 중국 전통의학을 배운 중의사였다”며 “자연스럽게 동양의학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루지나 교수는 2009년부터 중국 베이징의학대학원에서 중의학을 배웠다. 신경과 전문의면서 중의사 자격을 동시에 갖게 된 이유다.

루지나 교수는 “침·한약재의 치료 효과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러시아에서도 한의학 같은 동양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때마침 철도병원은 한국에서 한의학으로 유명한 강동경희대병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루지나 교수는 “임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한의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연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15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강동경희대병원 교수들이 진행하는 한방 진료에 참관했다. 침구과·한방소아과를 비롯한 안이비인후피부과·한방부인과·한방암센터·사상체질의학과 등을 돌았다. 임상현장에서 한의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공부했다.

의료진과 함께 병동을 돌면서 치료 과정을 토론하고, 한의학 임상논문도 살폈다. 한약재를 이용해 한약을 만드는 방식도 배웠다. 루지나 교수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기를 느끼도록 하거나, 한약재가 들어 있는 약침으로 통증을 줄이는 시술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뇌졸중·치매처럼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까다로운 난치병을 양·한방 의료진이 함께 치료하는 것과 IT기술을 적용하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약침요법은 러시아에 적합한 치료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약침은 벌독(봉침)·사향·우황·홍화 등 한약재에 들어 있는 약 성분을 추출·정제해 경혈에 놓는 한방 고유의 시술법이다. 통증을 줄이거나 피로를 없애는 데도 활용된다. 루지나 교수는 “러시아에는 목·허리·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며 “약침은 약효가 빨라 러시아에서도 보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동경희대병원은 향후 러시아 철도병원에서 한방클리닉을 담당할 의사를 연수할 때 이번 연수 프로그램을 보완해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병원 측은 그만큼 러시아에 한의학이 퍼지는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루지나 교수는 “러시아에 한의학을 알리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