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아내의 쌍꺼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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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 하나. 결혼을 앞둔 30대 초반의 여성이 직장 상사에게 상담을 청했다.

女 “부장님, 결혼할 남자가 생겼어요.”
상사 “축하하네. 미스 김, 근데 뭐가 문젠가?”
女 “사실, 그 사람이 직업도 좋고, 성격도 좋아요.”
상사 “그런데?”
女 “근데 머리카락이 좀 없어요.”
상사 “좀 없으면 어떤가. 식장 들어갈 때 10초만 창피하면 되는데!”

당신에게 배우자의 외모란 어떤 것인가요. 결혼과 부부관계에 있어서 배우자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중요한 걸까요. 수술해 만든 아내의 쌍꺼풀을 못마땅해 하던 남편이 있습니다. 아내에게 “재수술을 하라”고 요구하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입니다. 결국 이 문제로 두 부부는 법정에 섰습니다. 부부 금슬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이 부부의 이야기를,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색해 들려드리겠습니다.

#그의 이야기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Q. 남자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는?
A. 처음 본 여자.

단언컨대, 신이 존재한다면 남자는 무조건 여자를 좋아하도록 만든 게 틀림없다. 그것도 예쁜 여자를. 나 역시도 그렇다. 예쁜 여자가 좋다. 자기를 잘 가꿀 줄 아는 센스 있는 여자, 그런 여성을 아내로 맞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한 마디로 ‘내 스타일’이었다. 딱 하나만 빼고. 바로 눈이었다. 아내의 쌍꺼풀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데이트를 시작하고 얼마 지났을 때 넌지시 물어봤다. 혹시 수술한 거냐고. 아내는 그렇다고 했다. 우리나라 여자들 대부분이 성형 수술을 하는데, 성형이 대수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 맘에 안 드는 눈매였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내에게 다짐을 받았다. 쌍꺼풀 재수술을 하리란 약속이었다.

연애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보톡스를 맞겠다고 했다. 성형외과에 따라간 나는 결혼 전 아내가 한 약속이 떠올랐다. 이참에 쌍꺼풀도 재수술을 하자고 했더니 아내가 발끈했다. “5년 뒤에나 생각해 볼게.”

화가 치밀었다. 쌍꺼풀 재수술은 결혼을 전제로 한 약속이 아닌가.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따져 물었다. 아내는 “약속한 적이 없다”고 버텼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성인씩이나 돼서, 자기가 한 약속을 번복하다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내를 못생기게 만들자는 게 아니지 않나. 게다가 성형수술을 해준다고까지 하는데 반대할 이유는 뭔가.

쌍꺼풀 수술 문제는 점점 커졌다. 남들은 비웃을지 몰라도 배우자의 약속은 내겐 의미가 있다. 결국 처가까지 가서도 싸움을 하게 됐다. “성격 차이에 미적 감각의 차이까지, 우리 둘은 너무 다르다”고 으름장을 놓자 처가 식구들은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그 다음날, 아내는 “설 연휴 때까지 쌍꺼풀 재수술 문제를 생각해 보겠다”라며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아내의 약속은 공수표였다. 설이 지나도 아내는 수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외려 “내가 언제 수술받겠다고 했느냐, 생각해보겠다고 한 거다”라며 우기기 시작했다. 아내의 얼굴을 보는 매일 아침은 지옥이었다. 참다못해 출근해 아내에게 “재수술 안 할거면 이혼하자”고 문자를 보냈다.

#그녀의 이야기

그 사람은 유별났다. 한 번은 원피스 색깔이 맘에 안 든다고 데이트를 못하겠다고 했다. 연애할 땐 몰랐다. 그게 집착이었다는 것을.

대학교를 마치고, 쌍꺼풀 수술을 했다. 작은 눈 때문에 밋밋한 인상을 주는 게 싫었다. 결혼이야기가 나왔고, 그가 “다시 수술을 하라”고 할 땐, 다소 기분에 거슬리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단 한 번도 재수술이 결혼의 전제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결혼생활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돈이었다. 그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친정 부모님은 예단 비로 10억 원을 예비 시댁에 보냈다. 부유한 시댁서 우리 쪽에 건넨 봉채 비는 2억 원. 대신 시댁 어른들은 강남에 신혼집을 마련해주셨다. 시어머니는 “운동을 하라”며 내게 고가의 스포츠클럽 회원권도 끊어주셨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부러워했다.

우리가 처음 언성을 높인 건 함들이를 하던 날이었다. 직접 함을 지고 온 그에게 아버지는 거액의 함 값을 건네셨다. 어차피 아버지가 주신 돈, 함들이를 한다고 우리 집에 모인 사촌들에게 그 돈으로 남편이 점수를 따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함 값에서 동생들에게 용돈을 주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그가 펄쩍 뛰었다. “그건 너무 지나친 거 아냐? 장인이 나한테 주신 건데.”

이후로도 우린 종종 다퉜다. 신혼여행을 가선 면세점에서 내가 고른 화장품 때문에 “비싸다”고 면박을 줬고, 동생 생일 선물을 살 때도 의견이 달랐다. 한 번은 남편이 내 생일선물을 사주겠다며 백화점에 데려갔다. 정장 한 벌을 골랐더니 남편은 “너무 비싸다”고 해서 크게 싸우기도 했다. 남편은 ‘돈’ 때문에 다툴 때마다 내게 “과소비를 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남편은 물건을 사는 건 심하게 반대했지만 외모에 투자하는 데 대해선 이중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톡스를 맞겠다고 했더니 직접 따라나섰다. 정작 병원에서 상담을 받기 시작하자, 남편은 상의도 없이 내 쌍꺼풀 수술 이야기를 꺼냈다. 기분이 상했다. 상담 실장 앞에서 눈매가 촌스럽다고 말하는 남편은, 내 입장은 생각도 안 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남편의 말처럼 쌍꺼풀 수술을 다시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치원생만도 못하다. 억지를 부린다”며 몰아세우는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고작 쌍꺼풀 때문에 내가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수치였다. 친정 부모님 앞에서도 그는 “재수술을 받기로 해놓고 약속을 안 지키고, 미적 감각도 없으며, 지적수준도 차이가 나서 살 수가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난 결국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다. 1년도 안 되는 결혼 생활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법원의 판단은

서울가정법원은 이 부부가 남남으로 돌아서게 된 게 남편의 책임이라고 판단했다. “금전문제, 성형수술 문제로 비롯된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남편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갈등을 오히려 심화시켰다”면서 두 사람에게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아내가 결혼하면서 남편 측에 건넨 10억 원의 예단 비는 어떻게 될까. 법원은 “예단 비를 모두 아내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못박았다. 법원은 통상 혼인을 ‘계약’의 일환으로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혼수’는 법적으론 혼인의 성립, 그리고 양가의 정(情)을 두텁게 할 목적으로 주고받는 ‘증여’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짧은 기간 내에 부부가 남남이 되면, 양측은 서로에게 제공한 예물과 예단을 돌려주는 것이 옳다는 설명이다. (단 혼인 파탄의 원인 제공자는 예물이나 예단을 돌려달라고 할 권리가 없다고 해석한다)

아내는 법원의 판결로 남편 측에 건넨 10억 원 중, 시댁으로부터 봉채 비로 받은 2억 원을 제외한 8억 원을 돌려받게 됐다. 반면 ‘유책배우자’인 남편은 법원에 “아내에게 건넨 스포츠클럽 회원권을 돌려 달라”는 주장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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