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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변호사 남편'과의 10년 전쟁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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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들에 신호등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헤밍웨이

이것이 있어 행복하고, 또한 이것이기에 울컥 눈물이 쏟아지거나 천근만근 어깨가 늘어지기도 하는 것. 바로 ‘가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중앙SUNDAY에 연재하던 ‘위기의 부부들’을 이어받아 우리 이웃들의 우당 퉁탕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있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답이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서로 고민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행복이라는 무형의 것에 한 발짝 다가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이야기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색합니다.

①‘4번의 고소, 소송과 내용증명’ 변호사 남편과 이혼하기

#그녀의 이야기
변호사. 배우자감으로는 일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혼소송 대상자로는 최악이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생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말이다. 지난 10년간의 이혼 전쟁사는 이렇다.

그를 만난 건 내 나이 스물셋. 대학을 갓 졸업한 직후였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까지 패스한 그는 훌륭한 남편감으로 보였다. 소개를 받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레 혼담이 오갔고, 만난 지 8개월 만에 부부가 됐다.

연수원을 졸업한 그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됐다. 갈등의 시작은 결혼 12년째였다. 우연히 잠든 남편의 휴대전화를 본 것이 ‘10년 전쟁’의 서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의 휴대전화엔 낯선 여자의 이름이 찍혀있었다. ‘사랑한다’. 남편은 그 여자에게 뜨거운 사랑을 고백했다.

한 번의 외도는 눈감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듬해에도 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새로 이사 간 강남의 아파트 입주자 모임에서 만난 여자와. 남편은 구구절절 한 연애편지를 써가며 그 여자를 사랑했고, 2005년부터는 아예 동거를 시작했다.

갓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에겐 비밀에 부쳤지만 남편의 빈자리는 컸다. 몰아치는 바람도 지나가면 그저 스쳐 지나간 바람에 불과하겠거니. 일년도 채 되지 않아 돌아온 남편에게 다시 자리를 내어줬다. 하지만 남편의 외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이번엔 아예 “이혼해달라”며 소송을 걸어왔다.

법률지식이 많은 그는 직업을 백분 활용했다. 친정집엔 “딸이 경찰서 들락거리고 이혼법정에 서는 등 고통받지 않도록 조언을 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협박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전자우편을 허락없이 열어보았다(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며 두 번이나 고소를 했다. 2009년엔 나를 포함한 친정 부모, 동생까지 고소(사문서변조 및 행사죄)하고 1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며 민사소송까지 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장인 회사에서 일하는 남동생의 ‘전횡’을 고발한다며 내용증명을 보내고, 국세청에 탈세 신고도 했다. 바람을 핀 변호사와 이혼해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온 가족이 나 때문에 검찰청을 오가면서 진을 뺐지만 무너질 수는 없었다. 죄가 있다면 변호사와 결혼한 것 하나밖에 없질 않은가.

#그의 이야기
맞선 자리에서 만난 아내는 한눈에도 살결이 희고 고왔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 탓에 구김살도 없어 보였다. 결혼은 탄탄대로였다. 장인은 강남에 아파트를 마련해줬다. 10여 년은 남들처럼 순탄한 결혼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내가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부관계가 틀어졌다. 아내는 아파트를 담보로 거액을 빌렸다. 나 역시 보증을 서줬다. 금액이 8억 원에 가까웠다. 손이 큰 아내는 장인이 내게 준 호텔 헬스회원권도 팔자고 했다. 아내의 무리한 사업 확장 때문에 빚은 늘어갔고 급기야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갚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 이름으로 엔화대출도 받았다. 별거에 들어가고 이혼소송까지 내면서 난 10억 원대의 아내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정도 떨어졌다. 아내는 내게 ‘불륜’이란 꼬리표를 달았지만, 50대 내 인생의 행복도 찾고 싶었다. 내가 보증을 서준 돈을 종자돈 삼아 사업을 불린 아내는 현재 수십억의 자산가가 됐다고 들었다. 반면 나는 어떤가. 이 빚을 갚으려면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법원의 판단은
10년에 달하는 부부의 기나긴 싸움.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서울가정법원은 “두 사람은 이혼하라.”라며 이혼 판결을 내립니다.

법원은 이 가족의 파탄의 원인이 남편에게 있다고 봤습니다. “부정행위와 가출, 집요한 이혼 요구와 각종 민형사 소송의 제기가 혼인 파탄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또 아내에게 위자료로 1억 원을 지급하고, 아내가 키우는 아이들을 위해 양육비를 매달 100만 원씩 보내라고도 주문했습니다. 대신 변호사 남편에겐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마다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정기적인 면접교섭권’을 보장했습니다.

김현예 기자.

이 부부의 재산분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법원은 부부가 50%씩 재산을 나눠갖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의 사업으로 빚만 남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내는 남편의 재산 50%를 받으면 ‘마이너스’가 되겠지요. 재산을 받는 게 아니라 빚을 반 떠안게 되는 셈이죠. 그래서 법원은 묘수를 냈습니다. 재판부에서 파악한 남편의 재산은 -10억원. 아내는 2억 원이었습니다. 법원은 절반씩 재산을 나눠 갖는다 하더라도 남편에겐 빚만 남는다는 점을 고려해, 아내 소유의 2억 원의 재산을 모두 남편에게 넘겨주라고 판결했습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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