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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파양한 엄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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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얼마 안 됐을 때 이야깁니다. 한밤 중, 목이 말라 눈을 떴더니 칠순이 지난 친정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거실을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거실에서 불도 안 켠 채 말이죠. “아유, 엄마 왜 그래, 애가 울면 나를 깨우지, 불도 안 켜고 뭐 해?” 타박하니 노모(老母)가 이리 말합니다. “얘야, 나는 네가 한숨이라도 더 잤으면 해서. 너는 우는 네 자식이 맘 쓰일지 모르지만, 나는 내 자식인 네가 더 걱정된다.”

여러분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요. 여기, ‘가슴으로 낳은 아들’ 때문에 눈물 흘리는 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입양 후 지극정성으로 돌본 아이가 걷잡을 수 없이 폭력적으로 변해가자, 파양을 결심하게 된 주민(가명·11세) 엄마(56)의 사정을 들어보겠습니다. 내용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색합니다.

#“아들, 내 아들!”

매미가 유난히 시끄럽게 울던 뜨거운 여름날. 얇은 속싸개에 쌓여있던 주민이를 처음 만났다. 또래 아기들에 비해 유난히 작았던 주민이는 보호시설에서도 가장 울음이 많은 아가였다. 탯줄이 채 떨어지지 않은 사내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수백 번 다짐했다. 이 아이, 내 목숨만큼 사랑하겠노라고.

주민의 생모에겐 마음의 병이 있었다.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던 엄마가 낳은 아기. 이 꼬리표 때문에 시설에서도 주민이가 새 가족을 찾는 것은 어려울 거라고 했다. 남들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지만, 내겐 엄마의 병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 아이도 주민이를 반겼다. 주민이가 처음 우리집에 온 날. 큰애는 주민이의 작고 귀여운 손을 신기한 듯 만져대며 뽀뽀를 해댔다. 이년 뒤엔 여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어 2명의 작고 예쁜 아기들을 입양해 우린 대가족이 됐다.

완벽한 가족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의사인 남편 덕에 아이들은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주민이는 밝고 활달했다. 말도 빨리 배웠다. 처음으로 주민이가 ‘아빠’라고 말했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점차 변해가는 주민이

유치원복을 차려입고 의젓한 모습으로 유치원에 가던 날. 주민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들떠 있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신신당부에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잠시.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심각한 선생님의 목소리. 주민이가 여느 아이들과 좀 다르다는 거였다. 장난감을 두고 친구와 다퉜는데 뾰족한 연필로 친구의 얼굴을 찍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은 이어졌다. 젓가락으로 친구 얼굴을 그어버리거나, 컴퍼스로 친구들의 손을 긁었다. 화가 나면 주민이는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 되었다.

초등학교도 사립학교에 보냈다. 다소 외모가 외국인 같은 주민이가 혹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까봐 고민 끝에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주민이는 1학년 때부터 담임 선생님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수업시간엔 한자리에 앉아있지 못했다. 수업 중에 교실을 돌아다니기 일쑤였고, 툭하면 친구들에게 손찌검을 했다. 더러는 친구들의 물건을 가져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내 사랑이 부족한가 싶어 노력도 했지만, 주민이의 이상한 행동은 심해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거짓말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밥을 안 준다. 동생들은 안 때리는데 나만 엄마가 때린다”고 했다. 방과 후엔 집에도 들어오지 않아, 주민이를 찾아 학교 앞을 뒤지는 게 일상이 됐다.

우리 아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남편과 상의 끝에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행실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를 갖고 있어 치료가 시급하다는 거였다. 그날부터 통원치료를 시작했다. 미술치료도 해봤지만 주민이의 이상행동은 멈춰지질 않았다.

2년 전 4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선생님이 전한 이야기는 거짓말 같았다. 주민이가 수업시간 중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더란다. 놀란 선생님이 아이를 쫓아가 보니, 주민이가 돌을 집어들고 교문을 향해 뛰어갔다. 가까스로 아이를 붙잡은 선생님이 “어디 가니?” 묻자, 아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엄마가 늦게 집에 들어온다고 말해서 엄마를 돌로 때려죽이러 가요.”

#“미안해, 내 아들”

그 길로 주민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상태는 심각했다. 입원을 해야 했고, 약물 치료와 행동치료, 면담치료가 이어졌다. 아들은 조금씩 나와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듯했다. 의사는 정신병동의 장기 입원을 권했다.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가 있지만 극심한 폭력을 보이는 비행장애가 더 심각하기 때문에 격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주치의는 “어른들이 먹는 약을 투약해도 행동조절이 안 되는 상태”라고 전했다.

주민이의 폭력 때문에 두 여동생에게도 조금씩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놀란 마음에 두 아이도 상담을 받아보니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10년 전, 그날 주민이를 품에 안을 때 했던 약속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민이와 두 동생들이 한 집에서 지낼 수는 없었다. 두 아이를 보호하고, 주민이가 자신을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이별이 필요했다. 지난 몇 년간 주민이와 갈등이 이어지면서 내겐 우울증이 생겨났다. 아이 발병이 내 탓일 수 있다며 자책도 했지만 내 힘으로는 아이를 다잡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주민아.

#법원의 선택은

엄마의 파양 소송으로 법원은 고민에 빠졌다. 정신질환이 생긴 주민이를 위해 재판부는 무료로 아이를 변호할 ‘특별대리인’을 세웠다. 파양은 아이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주민이의 딱한 처지를 들은 변호사가 무료로 나서 변론을 했지만 결국 법원은 파양을 허락했다. “주민이의 두 여동생이 아직 어리고 발달 장애가 있어 보호가 필요한 데다 주민이가 체계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모두를 위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주민이 엄마가 “파양되더라도 후견인의 자격으로 주민이를 돌보고 싶다”고 호소한 부분도 감안했다.

현행 법상(민법 제905조 제5호) 파양은 ‘기타 양친자 관계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가능한데, 주민이의 폭력적 성향과 장애가 이에 해당한다는 거였다. 부산가정법원은 “부모가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면 부모로서의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다”고 밝혔다. 주민이는 아동보호시설에 들어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엄마는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2012년) 입양아동은 1125명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엄마가 미혼모(1048명)라 키울 수가 없어서, 부모가 가난해서(34명) 엄마 품에서 자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을 ‘가슴으로 낳은’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가장 많은 직업군이 회사원(499명)이었고, 이어 교사나 군인 등 공무원(112명)이었습니다. 의사·약사·판사·검사도 12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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