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문화 융성, 한식당에 길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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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태권
광주요 회장

가장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세계적 수준으로 개발·융합·발전시킬 수 있는 대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미각이라고 말할 것이다. 음악이 만국 공통어이듯 미각 역시 인종과 연령에 관계없이 모두가 함께 소통하고 융합할 수 있는 만국 공통의 가치다. 따라서 우리 전통 미각의 세계화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관광산업 육성이고 그 핵심 요소는 당연히 식당이다. 식당의 번성은 문화융합·융성의 실마리가 된다. 이는 박근혜정부가 지향하는 문화 융성에 주춧돌 역할을 할 좋은 자산이며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란 성취도 거둘 수 있다.

 일본의 스시, 프랑스 와인 등 실례를 통해 미각을 통한 문화적 공감은 궁극적으로는 세계 일체감이란 반영구적 큰 성취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 음식 역사란 그 나라 문명의 발전사인 동시에 미래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배경이 문화 융성의 가능성인 동시에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화란 시대 변화와 함께 진화·개발·발전하는 것이기에 현재로 이어진 전통은 당연히 그 가치가 시대와 어울리게 발전해 온 것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 문화는 조선왕조 멸망과 함께 단절돼 진화가 중단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전통문화의 경제적인 미래가치의 창조 활동은 중단됐고 외래 문화가 주인인 양 행세하는 경험을 했다. 그 뒤 ‘한강의 기적’이란 경제신화는 이뤄냈지만 주체적 정신 성장을 방치한 결과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 사회적 갈등, 문화 정체성 소멸이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선 선진문화대국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 융성이란 사상을 탄생시켰다고 짐작해 본다. 이는 대한민국의 문화정체성을 재확립해 우리의 문화상품과 용역의 가치를 세계 수준으로 고도화함으로써 내수경제를 일으키고, 문화적 위상을 드높여 나가겠다는 각오이자 결의일 것이다.

 필자는 4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조그마한 식당 엘불리로부터 문화 융성의 영감을 얻은 적이 있다. 1984년 이곳의 총주방장이 된 페란 아드리아의 신념과 노력이 스페인의 문화 위상을 세계적으로 드높인 예가 그것이다. 25년간의 끊임없는 투자와 열정으로 식당을 운영해 왔던 그는 분자 음식의 창시자로서 1년 중 6개월만 영업하고 나머지는 세계 음식문화 연구를 통해 얻은 영감으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세계 미식가들의 이목을 모았다. 놀라운 것은 2000년 이래로 아드리아의 식당은 줄곧 적자라는 점이다. 적자를 강의와 책 발간으로 메워 나간다는 그의 경영철학을 일반인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엘불리라는 작은 식당을 통해 음식 연구가가 스페인 전체 음식문화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으로 높였다.

 한국의 문화 융성도 이렇게 작은 식당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 5000년 역사와 전통을 철저히 파악하고 재해석해 가장 한국적이고 세계적일 수 있는 차별화된 건물, 내부 공간과 인테리어, 부엌·유니폼·공예품 및 소품·도자식기·술·음악·서비스 등을 새롭고 낯설게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만의 철학과 이야기가 넘치는 음식을 만들어 세련되게 차려내자. 지구인 모두가 감동하고 즐길 수 있는 식당을 창조·운영할 수 있는 저력을 충분히 가진 민족이 아닌가.

 이를 통해 우리 고유의 미각적인 가치와 문화적 스토리를 국내외에 알리고 그것으로 파생되는 의식주 문화가 개방적으로 소통되고 진화·발전한다면 작은 식당 하나하나가 또 다른 문화신화를 만들어내는 문화융합전시관이자 문화체험관이 될 것이 틀림없다. 식당이야말로 문화 융성 실천의 최소·최적의 실험공간임에 틀림없다.

조태권 광주요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