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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에 5000만원 기부자, 내년 세금 1000만원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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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금으로 사회의 음지를 보살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럴 만큼 세금이 풍족하지 않아서다. 세금을 보완하는 게 기부금이다. 인간의 선(善)한 의지가 바탕이 된다. 기부금은 법정기부금과 지정기부금으로 나뉜다. 공익성이 높은 게 법정기부금이다. 소득의 100% 내에서 세금 혜택을 본다. 기부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은 법정기부금, 특히 고액 기부금에 세금 폭탄을 퍼붓는다.

 가령 연봉이 10억원인 사람이 2억원을 기부할 경우 세금이 2억5604만원에서 3억204만원으로 4600만원 증가한다. 그만큼 기부 여력이 줄어든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적십자·바보의나눔과 같은 모금기관과 대학·고교·병원·해외한국학교 등에 내는 기부금, 국방헌금·이재민구호금품 등이 된서리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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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는 서연(12·여·가명)과 동생 한규(9·가명)는 국내 두 명뿐인 특수장애신드롬 환자다. 장(腸)에서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해 특수 정맥주사로 공급받는다. 건강보험이 안 되는 의료비는 병원 측이 지원한다. 2005년 이후 1억원 정도를 지원했다. 재원은 병원 기부금이다. 하지만 세법개정안(조특법 포함)이 현실화되면 기부금이 줄어 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다급하기는 병원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이 세법개정안 영향을 시뮬레이션 했다. 그 결과 연 소득이 3억원인 사람이 5000만원을 기부할 경우 세금 혜택이 1000만원 줄면서 기부 심리가 위축될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6000만원 이하는 세금이 늘지 않지만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 부담이 가파르게 증가한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개인기부금은 37억원으로 1000만원 이상 기부자 수는 전체의 2.2%이지만 기부금액은 76%를 차지한다. 이 병원 이종구 대외정책실장(가정의학과 교수)은 “고소득자일수록 세금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거액 기부가 줄 것”이라며 “병원 수입이 주는 마당에 기부마저 준다면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에 차질이 생기고 시설투자나 서비스 개선에 제약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암센터 건축에 5000만원을 기부하려는 사람이 세법개정안 대비법을 묻는 문의가 왔다”며 “기부를 권할 주요한 수단(세제혜택)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됐다”고 우려했다.

  대학의 경우 장학금에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서울대는 지난해 발전기금에서 77억8000만원을 장학금으로 썼다. 이 돈의 대부분은 지난해 기부금(469억5000만원)에서 조달했다. 기부금의 70%는 1000만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이 냈다. 기부가 위축되면 장학금뿐만 아니라 시설개선·연구비 지원도 줄어든다. 서울대 안지현 모금본부장(영어영문학과 교수)은 “발전기금은 서울대의 연구·교육·장학금 등 핵심 분야를 지원한다”며 “세법개정안에 따라 기부 심리가 위축되면 학교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포스텍·연세대·한양대·건국대 등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건국대 황신애 모금기획부장은 “대학의 경우 투자비가 크기 때문에 얼마나 고액 기부자를 유치하느냐가 모금액을 결정한다”며 “세금 정책으로 기부금이 줄면 대학경쟁력은 누가 책임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모금 분야에서는 ‘참깨가 백 번 굴러도 호박 한 번 구른 것보다 못하다’는 말을 즐겨 쓴다”며 “고액 기부가 한 번 꺾이면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10년 사이에 개인기부금이 늘긴 했지만 전체 기부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자리걸음(2001년 63.8%, 2011년 63.5%)이다. 미국의 73%에 비해 낮다. 개인기부의 86%가 종교단체 기부여서 내용도 그리 좋지 않다.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연세대 박태규 경제학부 교수는 “근로소득자들의 기부가 활성화돼야 전체 개인기부가 살아나는 것인데, 근로자 기부에 부담을 늘리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세법개정안이 시행되면)자발적인 기부 문화가 10년 전으로 후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대 홍기용 경영학과 교수는 “세법개정안은 국가 복지 재정을 위해 민간 복지 부분을 희생하는 이상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김동호·신준봉·이정봉·김혜미·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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