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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세금 는 만큼 기부 줄이면 돼" … 나눔시계 역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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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기부금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서 180도 달라졌다. 이명박정부까지는 기부문화 확산에 주력했지만 현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잇따라 찬물을 쏟아냈다. 복지재원 135조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제를 개편하면서 기부금이 휩쓸려 희생됐다.

 2000~2012년은 기부문화 확장 시기였다. 민관의 공동 노력 끝에 두레·향약·품앗이 등 선조들의 나눔 DNA가 되살아났다. 국가 예산이 미치지 못하는 양극화의 사각지대를 메웠다. 정책 지원도 잇따랐다. 1996~99년엔 소득의 5%까지만 기부금 소득공제를 했으나 2000년 들어 지정기부금은 10%, 법정기부금은 100%로 확대됐다. 지정기부금은 2011년 30%까지 올라갔다. 2010년 11월 보건복지부에 나눔정책TF팀을 만들면서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섰다. 나눔대축제·나눔국민운동본부·나눔국민대상· 나눔포털사이트 등을 도입했다. 나눔대축제에는 대통령이 참석했다.

 그러던 차에 올 1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1단계 기부금 때리기’가 시작됐다. 지정기부금의 소득공제 한도를 교육비·의료비·신용카드 사용액 등과 함께 2500만원으로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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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 2단계 때리기가 시작됐다. 원래 들어올 돈(세입)을 감안해 예산 지출을 정해야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쓸 돈(135조원의 공약 재원)부터 정했다. 이에 맞춰 인수위는 세입 확충 방안을 140대 국정과제에 담았고, 조세정의 확립의 한 방안으로 조세감면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시 우리 부처 실무자들은 너무 급격한 조치여서 실행 과정에서 매끄럽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을 냈으나 인수위원들이 강력하게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그걸 구체화해 지난달 9일 입법 예고했다.

 기재부는 지금 제도가 소득 역진적이어서 과세 형평을 위해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소득공제 방식은 고소득일수록 공제금액이 늘어난다. 기부금 소득공제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연봉 1000만원 이하 근로자는 기부금 공제가 평균 33만5000원이지만 5억원 근로자는 818만원을 공제받는다.

 박춘호 기재부 소득세제과장은 “특별공제 2500만원 한도(조특법)에 걸리거나 세액공제로 혜택이 줄어드는 근로자는 소수”라며 “앞으론 늘어나는 세금 부담을 감안해 기부를 (줄여)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 기부의 실상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2011년 근로소득자 기부금 5조1900억원 중 근로소득 상위 10%가 낸 돈이 53%(2조7286억원)를 차지한다. 세액공제 전환에 고액 기부가 직격탄을 맞는데, 이들이 기부금을 10%만 줄여도 2728억원이나 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해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모은 개인 기부금(1235억원)의 2.2배에 달한다. 기부금 대신 세금으로 정부가 복지 문제를 다 해결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연세대 강철희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금과 별개로 기부금으로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할 수 있게 자유를 줘야 하는데, 정부가 이런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조특법 시행으로 9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세법개정안으로는 고소득층 세금이 늘고 저소득층 기부자는 줄어 세금이 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솔세무회계사무소 조혜규 대표는 “고소득 근로자 기부금이 훨씬 많기 때문에 전체 세금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강 교수는 “대통령이 세수가 확대돼야 한다고 하니까 정부가 깊게 고려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게 나라가 선진화하는 데 적절한 거냐”라고 말했다.

 정책 시행방식도 지적을 받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2~3년 동안 간격을 두고 서서히 조절해야 하는 사안인데 너무 급하게 세법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그런 방법도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지정기부금의 소득공제 한도를 교육비·의료비 등을 포함해 2500만원으로 제한하는 법률. 올 1월 시행됐다. 고액 기부자의 세금이 크게 늘어난다. 현재 지정기부금을 2500만원 한도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세법개정안=조세 감면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 게 골자다. 기부금도 해당된다. 소득세법·조특법 등 여러 법률이 관련돼 있다. 기부금의 15%에 해당하는 세금을 깎아준다. 지금은 자기 소득 내에서 법정기부금은 100% 소득공제하고 있다. 연 소득이 6000만원이 넘는 사람의 기부금이 타격을 본다. 입법예고가 끝나면 정부 논의를 거쳐 국회로 제출할 예정.

 ◆법정기부금=국가·지자체·교육기관·의료기관·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내는 기부금. 국가가 할 일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공익적 성격이 강하며 지정기부금보다 세제 혜택이 더 많다. 지금은 자기 소득 내에서 기부금의 100%를 소득공제받는다. 세법개정안이 시행되면 근로소득자에 대한 세제 혜택이 크게 줄어든다.

 ◆지정기부금=국제 구호단체나 사회복지·종교·문화예술·환경 단체 등 대부분의 비영리법인이나 민간단체에 내는 기부금. 소득의 30% 한도 내에서 소득공제 혜택을 본다. 조특법과 세법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세제 혜택이 줄게 됐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김동호·신준봉·이정봉·김혜미·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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