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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 소사이어티 울리는 세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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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층에 전시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들의 손도장. 복지단체들은 세법개정안에 따라 고액기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전남 순천시 효천고 2학년 나원호(17)군은 지난해 100만원의 입학 장학금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수업료·보충수업비 등을 전액 면제 받는다.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배정철 장학금’ 덕분이다. 나군은 “생물학을 전공해 인체에 무해한 유전자재조합식품(GMO)을 개발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나군에게 요즈음 걱정거리가 생겼다. 내년에 장학금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지난달 9일 기획재정부가 입법 예고한 세법개정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나군의 장학금은 서울 강남구 ㈜어도 배정철(51) 대표의 기부금으로 조성됐다. 배 대표는 효천고를 비롯해 고교 4곳과 고려대·가톨릭대·서울대병원·순천향대병원 등에 연간 2억원 이상을 기부한다. 배 대표는 1년 중 하루도 안 쉬고 일식집을 열어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다. 하지만 내년부터 기부금의 15%만큼만 세금에서 깎아주는 방식(세액공제)으로 기부금 세제 혜택이 바뀌면 배 대표의 세금은 올해보다 4000만원 이상 늘어난다. 배 대표는 “법이 바뀌면 기부 여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소득세·조세특례제한법 등)이 기부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올 1월 지정기부금·교육비·의료비 등의 특별공제한도를 2500만원으로 제한하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이 전격 시행되면서 기부가 위축된 터에 이번 개정안으로 결정타를 맞게 됐다. 세법개정안이 시행되면 연봉 6000만원 이상 근로자는 15%의 세액공제를 받더라도 기부금의 9~23%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기부를 많이 할수록 세금이 늘게 돼 고액 기부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조특법은 지정기부금 단체인 월드비전·유니세프 등 민간모금기관에 충격을 줬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법정기부금 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적십자·바보의나눔·대학·병원·고교·해외한국학교, 이재민 구호금품 등에 영향을 미친다. 조특법보다 영향권 범위가 훨씬 넓다. 그래서 조특법이 세금 폭탄법이라면 세법개정안은 핵폭탄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지난 2월 민주당 원혜영·김영환 의원이 조특법 독소조항을 무효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해 기부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법개정안이 불거졌다.

 2000년 이후 한국의 기부는 괄목상대할 정도로 성장했다. 1996~99년 5%이던 지정기부금 소득공제 비율을 단계적으로 올려 2011년 30%가 됐다. 법정기부금은 96년 5%에서 2000년 전액공제로 확대됐다. 이 덕분에 개인기부금이 99년 8500억원에서 2011년 10년여 만에 7조900억원으로 8.3배로 늘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고액 기부자가 크게 증가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산하 억대기부자클럽(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2008년 6명에서 346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조특법·세법개정안이 나오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서울대병원·한국NPO공동회의 등은 조만간 기획재정부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할 방침이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조특법·세법개정안으로 세금 수입이 얼마나 늘지 모르겠지만 고액 기부가 줄면서 전체적으로는 손실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부자(父子)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인 류시문 노블레스오블리주시민실천 대표공동회장은 “기부를 많이 할수록 세금부담이 늘면 기부를 해야 할지, 얼마를 할지를 고민하게 돼 기부 의욕을 떨어뜨린다”며 “조특법 이전의 소득공제 방식으로 환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재부 박춘호 소득세제과장은 “소득이 높을수록 소득공제가 많아지는 역진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세액공제로 전환했고 기부금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며 “세금보다 더 큰 기부는 없으며 세금 부담이 걱정되면 기부할 때 처음부터 세금을 감안하면 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김동호·신준봉·이정봉·김혜미·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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