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사령실-기관사 교신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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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종합사령실은 22분 동안 현장상황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 시간 동안 상행선 노선 열차들에 대해 정상운행을 지시했다. 뒤집어 말하면 화재로 전력공급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연쇄추돌 사고로 참사규모가 훨씬 커졌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29년 동안 철도청.서울지하철 열차를 운행해온 베테랑 기관사 金모씨는 "방화가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종합사령실과 전동차 기관사의 초기대응이 너무 미숙했고 후속조치에도 허점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경찰이 20일 공개한 대구지하철 종합사령실과 기관사 간의 교신에는 지금까지 대구지하철 공사나 기관사들이 진술한 내용과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 이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의문이 생긴다.

교신 내용에 따르면 대구지하철 종합사령실은 사고 당일 오전 10시17분에야 "모든 열차는 사령실 지시를 받고 발차하라"고 지시를 내려 모든 지하철 열차에 대한 통제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첫 화재보고를 접수한 지 22분 후였다. 희생자들이 생사를 다투던 마(魔)의 시간대에 종합사령실은 "정상운행하라""단전이 됐으니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하라"는 한가한 지시만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대응 실패=현장을 촬영한 CCTV화면은 사고 당일 오전 9시53분27초쯤 승강장이 연기로 가득한 모습이 나오고, 이후 6초 뒤에 작동을 멈췄다. 이 무렵 1079호 열차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를 낸 1080호 열차는 오전 9시55분쯤 대구역을 떠나 중앙로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종합사령실에서 세명의 직원이 CCTV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화재발생을 눈치채지 못했다. 희생자를 줄일 수 있는 첫 기회를 놓친 셈이다.

종합사령실에서 화재를 감지한 시간은 오전 9시55분쯤. 중앙로역 역무원으로부터 첫 보고를 받은 것이다. 종합사령실은 곧바로 "전 열차에 알린다. 중앙로에 진입시 조심운전해 들어가라. 지금 화재가 발생했다"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사고역에 진입하는 1080호 전동차에 즉각 정지나 무정차 통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화재발생시 초기진압에 실패할 경우 진입열차는 무정차로 통과시키고 후속열차는 반드시 운행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종합안전 방재관리계획서'의 '안전수칙'을 무시한 것이고, 결정적인 두번째 기회를 놓친 셈이다.

종합사령실이 중앙로역 화재를 대수롭지 않은 '소형화재'쯤으로 오인한 것은 9시57분 이후에 이뤄진 교신에서도 드러난다. 중앙로역에 멈춰선 1080호 전동차 기관사가 "연기가 나고 엉망이다"며 심각성을 알리지만 종합사령실은 "전기가 끊어졌으니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하라"는 지시만 반복했다.

◇후속조치 미숙=종합사령실과 1080호 전동차 사이의 교신이 끊긴 것은 오전 9시59분쯤. 종합사령실과 연락이 가능한 무선기는 비상배터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갑자기 정전이 발생하더라도 사령실과 교신이 가능하다. 따라서 무선기가 작동 안되는 것은 비상배터리까지 피해를 본 비상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순간 1080호 기관사는 "지금 급전됐다. 살았다가 죽었다 엉망이다. 빨리 조치를 바란다"고 다급하게 요청했다. 또 10시 정각에는 칠성역에 서 있는 1082호가 "단전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전력공급이 완전히 중단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합사령실은 전력공급 중단 사실을 몰랐고, 사고현장과 교신이 끊긴 이후 6분이 지나도록까지 사고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이는 종합사령실이 1079호 전동차를 뒤따르던 1077호 전동차에게 "방촌.용계역에서 1분씩 늦게 출발해 열차의 간격을 조정하라"고 지시한 데서도 증명된다.

사령실은 10시6분쯤에도 "진천역에서 안심역 쪽으로 운행하는 상행선 열차는 정상운행을 하고 신호나 계기에 문제있는 열차는 종합사령실에 보고하라"고 모든 열차에 연락했다. 모든 지하철의 운행을 정지시켰어야 하는 상황에서 종합사령실은 정상운행 지시를 반복한 것이다.

교신내용에 따르면 종합사령실은 오전 10시17분에야 "전 열차에 알린다. 역에 도착한 열차는 사령지시를 받고 발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구지하철의 모든 전동차를 너무 늦게, 이때부터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신내용에 따르면 1080호 전동차를 운전하던 최상열씨에게도 책임이 있다. 전동차가 역에 들어오면서 연기가 가득할 정도로 화재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기관사 崔씨는 안전수칙과 '선조치 후 보고'의 행동요령에 따라 수동운전으로 급정거했어야 했다.

대구지하철은 기관사가 역 전방 3백여m 앞에서 브레이크를 걸면 급정거할 수도 있고, 후진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그러나 서울지하철 공사 관계자는 "대구지하철은 종합사령실에서 열차의 운행을 책임지기 때문에 기관사는 우선 종합사령실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며 "기관사가 화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사령실의 지시에 따라 역에 정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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