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이철호의 시시각각

개성공단, 보험부터 들고 가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철호
논설위원

개성공단 정상화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설비점검팀이 다녀오고, 이달 말께 재가동에 들어가는 공장도 나올 모양이다. 숙원이던 3통(통행, 통신, 통관)에도 숨통이 뚫렸다. 한숨을 돌린 입주 기업들은 “국민과 대통령께 감사하다”는 광고를 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줄잡아 1조원인 피해보상부터 문제다. 언제 북한이 ‘재발 방지’를 깰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더 이상 승용차 지붕에까지 짐을 얹어서 철수하는 불편한 장면은 보고 싶지 않다.

 다행히 큰 고비는 넘겼으니 이제 우리 입주 기업에 쓴소리를 좀 해도 무방할 듯싶다. 우선 북한에 가려면 보험부터 들고 가라. 개성공단 투자 기업에는 두 가지 보험이 개설돼 있다. 첫째로 투자액의 0.6%를 내면 한 달 이상 가동이 중단될 경우 투자액의 90%를 배상해 주는 투자보험이다. 123개 입주 업체 중 가입하지 않은 곳이 27개에 이른다. 또 하나는 교역보험이다. 1%의 보험료를 내면 원부자재와 완제품 납품 불이행에 따른 피해를 최대 70%까지 물어준다. 이번처럼 한시적인 가동 중단에 훨씬 효과적인 보험이다. 문제는 이 보험에 단 한 업체도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입주 업체들은 남북 긴장이 높아지면 1~2주 정도 원부자재 반입이나 완제품 재고물량을 줄이는 꼼수로 넘어왔다.

 세계 어디에도 정치적 위험까지 커버해 주는 보험은 없다. 재보험은 아예 불가능하다. 개성공단은 일반 상업보험이라면 보험료 10%도 어림없을 만큼 위험한 투자다. 오로지 남북협력기금이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해 특수한 정책보험을 지원해 온 것이다(수탁기관은 수출입은행). 그럼에도 입주 기업들은 몇 푼 아끼려고 이런 특혜성 보험마저 외면하다 뒤통수를 맞았다. 제대로 보험만 들었다면 이번처럼 원부자재·완제품을 반출하느라 난리를 치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개성공단도 보험부터 들고 갔으면 한다. 서글픈 ‘희생자 코스프레’는 이미 신물나게 지켜봤다.

 사실 개성공단은 남는 장사였다. 시간외 수당까지를 포함해 평균 임금이 140달러로, 북한의 중국 공장 외화벌이(250달러)보다 훨씬 낮다. 겉으로 입주 업체들은 ‘밑진다’고 엄살을 부렸다. 하지만 통일부에 따르면 개성공단 토지분양권(50년간 사용권)은 모두 19건이 거래됐다. 그것도 분양가격에서 적어도 50%, 많게는 두 배의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평당 14만9000원이던 분양가는 북한 핵실험 전에는 30만원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잘될 때는 혼자 이익을 챙기고, 문제가 생기면 당국을 탓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개성공단 투자도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책임이다.

 향후 개성공단은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한번 혼난 뒤 아예 사업을 접을 움직임이다. 개성공단은 여전히 인력 채용과 해고 등 인사권이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상당수는 투자환경이 훨씬 좋아졌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3통이 풀리고, 개성공단의 ‘국제화’에도 기대가 크다. 외국 기업이 입주하면 북한의 자의적 판단에 예방주사를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화는 우리 입주 기업엔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키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작년처럼 슬그머니 이전 가격을 조작하다 북한에 ‘세금폭탄’을 얻어맞아선 안 된다. 개성공단은 더 이상 불투명한 경영의 보호막이 아니다.

 앞으로 개성공단이 잘됐으면 좋겠다. 북한에 더 많은 초코파이가 흘러갔으면 좋겠다. 임금도 쑥쑥 올라 5만여 명의 북한 근로자가 더 잘살게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우리의 바람처럼 순탄하게 흘러온 경우가 드물다. 이제 입주 기업들도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 철수하고, 손실에 대비한 보험은 미리미리 드는 게 최소한의 예의다. 혈세나 다름없는 남북협력기금을 무보험·강심장 영업의 뒷돈처럼 여겨선 안 된다. 다시 한번 개성공단 정상화를 축하한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입주 기업들의 앞길도 순조롭게 열렸으면 한다.

이철호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