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네이버, 상생 대책 내놨지만 알맹이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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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NHN 대표가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터넷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상생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그동안 많은 성장을 했지만 이제 함께 같이 가는 방향을 봐야 하는 시기가 됐다. 그것을 늦게 깨달은 게 우리 잘못이다.”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NHN 기자간담회. 김상헌(50) 대표는 네이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민하고 반성하겠다”며 연신 몸을 낮췄다.

 인터넷 독과점 논란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네이버는 이날 ‘인터넷 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정치권은 물론 정부·산업계 등 너나 할 것 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 서둘러 개선책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네이버는 우선 ‘만화발전위원회’를 시작으로 파트너들과의 ‘네이버 서비스 상생협의체’를 구성키로 했다. 또 벤처기업협회 등 유관협회들과 ‘벤처기업 상생협의체’를 만들어 소통의 장을 연다. 콘텐트 사업자들과 공정한 계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 제도’와 ‘서비스 영향 평가제도’도 도입한다. 이는 네이버가 인터넷 검색시장의 75%를 점유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벤처·중소업체를 희생시키고, 콘텐트 유통 생태계를 고사시키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검색광고 표시를 개선해 이용자들이 ‘광고’와 ‘정보’를 구분할 수 있게 하고, 총 1000억원 규모로 ‘벤처 창업 지원 펀드’와 ‘문화 콘텐츠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런 ‘장밋빛’ 약속에도 정작 수혜자인 인터넷·벤처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컴닥터119’의 이병승 대표는 “중소업체들이 네이버에 상생을 위한 개선사항을 계속 말해 왔는데, 이번 발표에서 상생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벤처업체 대표도 “창업기업이 바라는 것은 금전적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조성해 달라는 것”이라며 “벤처기업이 지원을 받더라도 결국 네이버가 직접 뛰어들어 서비스 경쟁을 한다면 해당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이날 내놓은 상생방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2010년에도 주요 포털·이동통신사·관계기관이 함께하는 ‘인터넷 상생협의체’가 발족했지만 벤처기업의 참여가 미미해 얼마 안 가 유명무실해졌다. 결국 NHN이 일방적으로 내놓은 자율 상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논란의 핵심인 중소업체 아이디어 베끼기, 독과점, 문어발식 사업확장 등 ‘시장 지배력 남용’ 해소를 위한 대책이 빠져 있어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네이버의 가장 큰 문제는 사용자들과 콘텐트를 연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콘텐트를 사 온 뒤 유통시키는 ‘콘텐트 독점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구조를 바꾸겠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이날 발표와 상관없이 네이버 규제안 입법화를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나름대로 진일보한 내용을 담았지만 본질은 건드리지 않았다”며 “네이버와 같은 포털은 공공재라고도 볼 수 있는 만큼 이를 이용해 시장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를 규제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손해용·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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