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낙상 55%는 '집안 문제' … 근력 떨어지면 내집 문턱·욕실이 흉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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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방배동에 사는 박유순(73·여)씨는 집안에서도 조심스럽게 다닌다. 며칠 전에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침대에서 일어서다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졌다. 허벅지는 멍이 들었고 손목 인대는 늘어났다.

#황연실(78·여·서울 고덕동)씨는 몇 달째 누워 지낸다. 새벽녘에 화장실을 다녀오다 가볍게 넘어진 것이 문제였다. 욕실 슬리퍼에 발을 올려놨다가 뒤로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욱신거려 병원에 갔더니 엉덩이뼈(고관절)가 부러졌다며 수술할 것을 권했다.

낙상 두려워 안 움직이면 몸 기능 더 퇴화

평생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던 집안이 갑자기 흉기로 변할 수 있다. 작은 문턱이나 장식장·침대·소파·욕실이 노인에겐 모두 위험요소다. 2011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고령자 안전사고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낙상의 55%는 집안에서 일어났다. 침실과 방이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욕실>거실>주방>현관>베란다’ 순으로 발생했다. 대한노인재활의학회 나은우(아주대병원 재활의학과) 회장은 “나이가 들면 근육이 줄면서 유연성·균형감각이 떨어진다”며 “사소한 충격에도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건강한 집드림 캠페인’ 시리즈의 일환으로 가족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낙상을 예방하고 막대한 국가 의료비 손실을 줄이자는 취지의 ‘노인 낙상, 암보다 더 무섭다’를 연재한다. 첫 번째 주제는 ‘노년기를 위협하는 복병 집안에 있다’다.

낙상은 노년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불청객이다. 나 회장은 “매년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3명이, 80세 이상은 둘 중 한 명꼴로 넘어져 다친다”고 말했다. 한 번 넘어지면 심리적으로 위축돼 외부 활동을 꺼린다. 덩달아 신체 운동량이 감소하면서 근력·관절 기능은 더 떨어진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임재영 교수팀은 경기도 성남지역 노인 828명을 대상으로 낙상 두려움 정도, 평소 운동 습관, 일상생활 활동 제약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 노인의 67.4%는 평소에도 넘어질까 걱정된다고 답했다. 이런 노인은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다.

1인당 평균 치료비 143만5000원 지출

사회·경제적 부담도 크다.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감신 교수팀은 65세 이상 노인 229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경남 하동·산천지역에서 낙상 환자의 직·간접 치료 비용을 계산했다. 여기에는 병원 진료비·약값·일당·간병비·교통비·휠체어 등 보조용품 구입비 등이 포함됐다. 분석 결과 낙상 노인은 1인당 치료비로 평균 143만5000원을 지출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국가외상 조사자료에서도 고령층 낙상은 교통사고 다음으로 의료비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통증 가벼워도 일단 X선 촬영 해봐야

낙상으로 가장 손상이 큰 부위는 엉덩이다. 노인은 신체 중심이 뒤로 쏠려 있어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넘어진다. 체육과학연구원 송주호 박사는 “뒤로 넘어지면 앞으로 손을 짚으면서 충격을 완화하지 못한다”며 “자기 몸무게의 3배 이상 되는 충격이 엉덩이에 집중된다”고 말했다. 회복까지 최소 3개월 이상 누워 있어야 한다. 나 회장은 “엉덩이뼈 골절은 합병증이 무섭다”며 “장기간 누워 지내면 눌린 부위에 욕창이 생겨 피부가 괴사한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엉덩이뼈 골절 환자의 28.8%가 1년 이내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다.

미끄러져 주저앉으며 손을 짚었을 때 발생하는 손목 골절도 흔하다. 괜찮겠지 하고 방치하면 손등 뼈가 변형될 수 있다. 임 교수는 “노인 골절의 90%는 낙상이 원인”이라며 “골밀도가 젊은 시절의 25%에 불과해 뼈가 충격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했다.

낙상 대처법은 간단하다. 일단 병원을 찾아 X선 촬영을 한다. 움직이는데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뼈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인대를 손상시켜 부상을 키운다. 이후 재활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에 빨리 복귀할 수 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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