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재판소원, 법 개정으로 다룰 문제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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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헌법재판소가 법원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간 대법원과 헌재가 재판 영역을 놓고 갈등을 계속해 왔다는 점에서 사법 체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는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헌법적 논의의 대상이 돼야 할 문제를 법률로 고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현행 헌법재판소법 68조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즉 재판소원(裁判訴願)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헌재는 이 규정을 고쳐 재판소원을 허용해야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폭넓게 보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식의 한정위헌 등 이른바 변형결정에 기속력(결정의 효력)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재판소원 허용이나 변형결정에 대한 기속력 부여가 사실상 4심제 도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현재의 3심제를 일부라도 허무는 것은 재판 시스템에 혼란을 빚을 소지가 있다. “엄격한 요건하에 제한적으로 허용하면 된다”는 지적도 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한 이들이 헌재로 몰리는 것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재판 실태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연구가 선행돼야 할 사안이다.

 국가 공권력을 통제 대상으로 하는 헌법소원에서 사법권만 제외할 근거가 있느냐는 헌재 주장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 대법원이 한 해 3만6000건(2012년 기준)의 사건을 처리하는 상황에서 명백하게 잘못 판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그러나 재판소원을 허용해 헌재를 법원 위에 세우는 것은 두 재판기관을 대등하게 보는 현행 헌법에 배치될 수 있다. 설사 필요성이 있다 해도 법 개정이 아닌 헌법 개정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대법원과 헌재가 특정 사건을 놓고 핑퐁게임을 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에도 맞지 않다. 두 기관이 영역 다툼에서 벗어나 어떤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인지 고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