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유전자 겁난다고 '유방 절제' 서두르지 마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유방암 가족력이 있는 여성이 유방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방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안젤리나 졸리가 최근 유방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 조만간 난소도 잘라낼 계획이라고 한다. 유전자 검사 결과 졸리는 유방암·난소암 발병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은 유전성 암 고위험군이다. 어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유방암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 원인이다.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종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종종 암 예방적 차원에서 유방 절제술을 받지만 한국에선 흔하지 않다”고 말했다.

예방적 절제술 받은 안젤리나 졸리 화제

선천적으로 암에 약한 체질이 있다. 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전체 암 환자의 5~10%는 유전성 암 환자다.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암을 일으키는 BRCA(Breast Cancer의 약자)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이 유전자가 있으면 세포 돌연변이를 제대로 억제하지 못한다. 이른바 유전자 변이 수정시스템(DNA Repair system)이 없어 돌연변이된 세포가 암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나 형제·자매가 암에 걸렸다면 졸리처럼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울대병원 외과 박지원 교수는 “유전성 암은 멘델 유전 양상에 따라 우성 유전을 한다”며 “부모 중 한 명이 유전성 암에 걸렸다면 자녀가 암에 걸릴 확률은 50%”라고 말했다.

모든 암이 유전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화의료원 여성암병원 백남선 병원장은 “유방암·난소암·대장암은 유전적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말했다. 국내 유방암 환자의 7% 정도는 유전성 유방암을 앓는다. 미국은 이보다 많은 12%다.

졸리와 같이 유방암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림대성심병원 유방내분비암센터 김이수 교수는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정기검진을 받거나 유방암 예방약(타목시펜)을 먹는 것만으로도 암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 병원장은 “예방적 유방 절제술은 암 발생 가능성을 90% 이하로 낮추지만 조기 유방암 치료와 비교해 사망률을 낮췄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또 유방 모양을 만들기 위해 일부 유방조직을 남겨둬 유방암 위험도 여전히 존재한다. 김 교수는 “유방암은 조기 발견과 치료가 생존율에 영향을 미친다”며 “유방암 환자의 70% 이상은 조기 유방암으로 진단받는다”고 말했다. 국내 유방암 1기의 생존율은 98.4%다.

4촌 내에 젊은 암 환자 있으면 유전 의심

유전성 암을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집에서 가계도를 그려본다. 부계와 모계 3대 세대 가족 구성원 중 암 환자가 있는지 살핀다. 다음엔 나이다. 암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50세 이후부터 시작해 나이가 들수록 발생률이 높아진다. 사촌 이내 친척 중 비교적 젊은 30~40대에 암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암 유전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졸리의 경우엔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모두 유방암·난소암을 앓다 사망했다. 특히 어머니는 56세에 사망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난소암을 앓았다. 그 전엔 유방암을 앓았다. 그녀가 낳은 아이도 암 유전자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종원 교수는 “대장암·유방암 가족력이 있다면 일반인보다 5년 이상 앞당겨 암 정기검진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전성 암유전자 검사를 받는 것도 방법이다. 암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를 조사해 돌연변이 여부와 암 발병 가능성을 알려준다. 국립암센터·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아주대병원 등 주요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암이 아닌 유전자 돌연변이로 암이 발생하는 유전성 암만 예측이 가능하다. 아주대병원 유전학클리닉 손영배 교수는 “유전성 암은 인과관계가 분명해 적극적으로 암을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암 유전자 있어도 100% 발병하지는 않아

백남선 병원장은 “암 유전자를 갖고 있어도 암 발병까지는 개인 차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유방암학회에 따르면 BRCA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 사람은 10명 중 7명이 유방암에 걸릴 수 있다. 난소암은 최대 2명이다. 암 유전자는 암 위험요인에 노출되면 암을 촉진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암 가족력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위암 가족력이 있는 남성이 있다고 가정하자.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위암 억제 유전자가 없다. 이 남성은 헬리코박터와 같은 균 또는 짜고 탄 음식 등 발암물질에 노출되면 암 억제 유전자가 있는 사람보다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헬리코박터균은 소화성궤양·만성위염·위암의 주요 원인이다.

국립암센터 위암센터 최일주 박사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 결과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위암으로 진단받은 40세 이하 환자와 가족, 일반인 600여 명을 대상으로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젊은 위암 환자를 둔 가족은 일반인보다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이 10.8%p 높았다.

유전성 암 고위험군은 정기적으로 암 검진을 받아야 한다. 또 육식·소시지 같은 포화지방산 섭취를 줄이고 술을 삼가고, 섬유질이 풍부한 채식 위주로 식습관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권선미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촬영 협조=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