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방의회 유급보좌관제 도입은 시기상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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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올해 안에 시·도 광역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유급보좌관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14일 밝혔다. 연 수십조원에 이르는 광역자치단체의 예산을 다루고 시민생활과 직결된 일을 하는 광역의원들에게 일할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기초의회의 경우도 단계적으로 유급보좌관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급보좌관제는 지방의원들이 지자체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단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유 장관의 발언은 정부가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꾸준히 지켜왔던 “유급보좌관제는 지방자치법에 위반한다”는 원칙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일이다. 장관이 정부 원칙을 바꾸기 위한 각계 의견수렴 과정이나 행정적·정치적 절차도 없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문제다.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유급보좌관 조례’를 제정하자 안행부 전신인 행정안전부가 제소해 대법원은 지난 1월 “지방의원 보좌관제는 현행 제도에 중대한 변경을 일으키는 것으로 국회에서 법률로 정해야 할 입법사항”이라며 위법 판결을 내렸다.

 이 제도는 예산도 만만치 않게 든다. 전국 17개 시·도의 광역의원 정원인 855명에게 연봉 5000만원의 보좌관을 1명씩 둔다고 치면 매년 427억5000만원이 들어간다. 재정자립도가 올해 평균 51.5%에 지나지 않는 지자체 형편에서는 부담이다.

 지방자치제 출범 당시 무급 명예직으로 출발한 지방의원들에게 2006년부터 슬그머니 수당을 지급하면서 유급화한 것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회 유급보좌관제 도입은 서두를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해당 예산을 부담해야 하는 지자체와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국회, 그리고 세금 낭비를 우려하는 주민을 어떻게 설득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 제도 도입이 국민적 합의를 얻으려면 지자체가 재정 건전화부터 이루고 지방의원들이 책임지고 지자체를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노력을 하는 게 우선이다. 그 전까지는 기존 사무조직을 활용하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