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헌재 소장 공백 두 달, 새 정부의 직무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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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1일로 헌법재판소장 공석 사태가 60일째를 맞았다. 이강국 전 소장이 1월 21일 퇴임한 이후 후임으로 내정됐던 이동흡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파행 운영이 이어지고 있다. 소장 직무대행을 맡아 온 송두환 재판관도 22일 물러난다. 정원 9명인 헌재가 7인 재판관 체제로 운영되는 초유의 일이 눈앞에 왔다.

 이동흡 후보자의 지명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하지만 출범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 새 후보자를 지명조차 못한 것은 새 정부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대통령이 지명을 해도 신임 소장이 인사청문을 거쳐 실제 업무를 시작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데 아직 인선조차 끝내지 않았으니 심각하고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부조직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와 인사 잡음이 이어지면서 헌재 소장 인선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고 새 정부는 변명할 수 있다. 이런 발상 자체가 위헌적이다. 헌법재판소는 위헌심사·탄핵심판·정당 해산심판 등 중대한 사안을 다루는 헌법기관이다. 헌재 소장이 대법원장과 국회의장, 국무총리와 함께 4부(府) 요인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부처의 장관과 비교할 수 없는 핵심 기관의 수장인 것이다. 수장 없는 기관의 업무가 정상적일 수 없다.

  물론 재판관 7인 이상만 있으면 회의는 가능하다. 하지만 7인 결정체제는 파행 운영을 의미한다. 위헌결정의 요건은 3분의 2 찬성이다. 7명 중 6명이 동의해야 위헌결정이 가능하다. 헌법재판 기능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당장 헌재는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결정을 선고하는 관례를 깨고 일주일 앞당긴 21일 선고하기로 했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의 위헌 여부를 다루기 위해서는 최소 8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에는 화학적 거세의 위헌 사건, 투표시간 연장 관련 헌법소원 사건 등 민감한 사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수많은 개인·기관이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는 당장 새로운 헌법재판소장 후보와 송두환 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위헌적 사태를 조속히 중단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