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인력공단 공채, 스펙 안 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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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원만 하면 모두 입사 시험을 보게 해준다니 획기적이네요” “공기업부터 바뀌면 앞으로 다른 곳도 이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요”. 구직 희망자 35만 명이 가입해 있는 인터넷 동호회인 다음 카페 ‘공공기관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올라온 글들이다. 지난 7일 한국산업인력공단 신입사원 채용 공고가 난 이후 쏟아진 반응이다.

 공단은 올해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학력(전공)·영어성적·가족사항 등 ‘스펙’을 모두 보지 않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런 세 가지 항목을 모두 없애기로 한 건 공공기관 중 처음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그간 일부 공기업이 나이·학력 기재란을 없애는 방식으로 열린 채용을 시도해 왔다”며 “영어성적을 포함한 전반적인 ‘스펙 초월’은 공단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입사 지원서에는 직무와 연관한 인턴·경력·수상내역은 적도록 했다. 그러나 ‘성장과정’ 같은 형식적인 질문은 업무에 필요한 성향(조직이해·문제해결능력 등)을 확인하는 질문으로 바꿔 각 500자 내외로 줄였다. 또 지원자 전원이 직무능력평가(직무적성검사·한국사·영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치러진 법학·행정학 등 선택과목의 ‘허들’도 없앴다.

 공단은 인성면접을 포함한 2차 면접에서도 집단 토론을 없애고 개인의 인성과 직무역량을 평가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공단의 장덕호 인재개발팀장은 “올해 고용노동부에서 제안한 ‘핵심 직무역량 평가모델’을 적극 도입했다”며 “역량 있는 인재 선발에 불필요한 ‘형식’은 다 버리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스펙보다 인성이나 잠재력을 중시하는 채용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겠다는 취지다. 공단은 사원과 함께 뽑는 청년인턴(6개월 계약직) 80여 명도 직무능력 중심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구직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입사 지원서를 받은 지 3일 만에 총 4000명가량이 참여했다. 지난해 같은 규모(20명 내외)로 진행된 채용(지원자 2000명)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공단은 지원서 접수 마감일(15일)까지 지난해의 5배가 넘는 지원자가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정책분석실장은 “국내에서는 10명 중 8명 가까이가 대학에 진학하는 등 취업 시장에서 스펙 위주의 평가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인 비용이 매우 크다”며 “공기업이 선도적으로 능력 위주의 채용 문화를 만들면 중소기업을 포함한 사기업에까지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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