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풀이에 그친 학제 개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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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학제개편을 에워싼 시비는 결코 어제오늘에 시작된 일이 아니다. 최근만 하더라도 문교부는 지난 17일 그 자체 내에 마련된 학제개편 추진위의 5개 시안을 종합검토 끝에 현행 학제중 중·고교의 통합만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6·6·4」안을 정부측 최종안으로 확정했다고 공식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겨우 10일밖에 안 되는 27일에는 정부 및 여당이 다시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뒷받침한다는 명분 아래 또 하나의 이색적인 학제 개편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66학년도부터 실시하여 6년 후인 72년도에 완성하게 되어있는 이 기간학제 안은 ①동일계 중·고교의 통합 ②상급학교에 진학할 국민학교 아동의 5년 졸업 ③7년간의 중등교육을 다시 4·3제로 구분하여 대학 진학자와 실업계 진출자에게 각각 특수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실업교육의 실질적 충실화를 기한다. ④고등교육연한은 현재와 같으나 그 입학자를 극도로 제한한다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북구식 복선형 학제를 택한다는 것이 그 주요골자로 소개되고 있다.
교육이 그 본연의 발전궤도에 오르기 위하여 필요한 한가지 조건이 교육제도 개편에 있음은 이제 아무도 의심할 사람이 없다. 따라서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각종 형태의 학제개편논의를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에 있으며, 또 그런 까닭으로 해서 문제의 「5·7·4제 복선형 기간학제 안」에 대해서도 그 나름대로의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치 않는다.
이 안은 ①세계공통의 기간학제 연한인 l6년을 그대로 두면서도 학생 개개인의 자질능력과 지역사회의 특수한 요구를 함께 만족시켜줄 수 있다는 점. ②이른바 미국식(단선형)교육제도만이 유일한 민주형 교육제도라는 신화적 미망을 감연히 버리고 우리 나라 정서에 좀더 알 맞는 북구식 복성형 학제의 모법을 좇으려고 하고 있다는 점 ③실업교육의 실질적 향상과 의무교육의 위기타개에 즉각적인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점 등등, 이 모든 점에 있어 이 안은 확실히 종래의 어떤 학제개혁시안보다도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는 솔직이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백년대계인 교육의 틀을 세우는 기초공사가 곧 학제개편일진대 이러한 개편 안이 제아무리 눈에 띄는 몇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하여, 그것을 당장 내 학년도부터 실시하기로 한다는 당국의 즉흥성에 대하여서는 우리는 단연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학제개편을 단순히 연한 문제만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역풀이 같은「난센스」이다. 장기적 국가 발전계획과의 연관성, 민주국가 이념을 구현키 위한 세심한 고려, 학교종별과 교과내용에 있어 학생개개인의 개성과 능률에 적합한 다양성유지를 위한 적절한 배려, 도시·농촌을 막론하고 각기 그 독자적인 교육적 요구에 대한 대응책, 국민경제의 실정과 교육적 이상의 절충적 구현책, 그리고 광범한 사회교육체계와의 연관성강조 등등의 제안점이 모두 고려되고 치밀하게 검토된 연후의 교육 개편론이 아닌 이상, 어떠한 학제개편론도 그것은 결국 경솔과 즉흥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믿는다.
하물며 불과 10일간에 백 팔십도의 변덕을 부린 이번 학제개편 안을 그 눈에 띈 몇 가지 장점만을 이유로 곧장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외의 각계전문가를 총망라하고, 상당히 오랜 심의기간을 주어 전문적인 검토를 거친 다음이 아니면 우리는 어떠한 즉흥적 학제개편의도에 대해서도 단연 반대의 입장에 서있음을 거듭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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