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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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의 대가라 불리는 미국 소설가 레이몬드 카버의 「성당」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어느날 아내의 오랜 친구인 시각장애인이 집을 방문하자 남편은 떨떠름하게 그를 맞이한다. 시큰둥한 시간이 지나고 남편과 시각장애인은 서로 얘기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텔레비전에 성당의 모습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은 시각장애인은 성당의 모습을 묘사해달라고 부탁한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커다란 도화지 위에 성당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조금씩 성당 그림이 완성되고 두 사람은 묘한 희열을 느낀다. 손으로 성당의 전체를 느낀 것이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테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등의 얘기는, 시각장애인에게 사치스러울 수 있겠다. 암흑의 세계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리라. 추측하건대, 볼 수 없다는 것은 아마도 인간에게 죽음 다음으로, 아니 죽음 이상의 형벌일 것이다. 그러니 그 형벌을 어깨에 짊어지고 뭔가를 이뤄냈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이겨냈다는 얘기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사느니 맹인으로 사는 게 낫겠지
에릭 와이헨메이어의 자서전 『마음의 눈으로 오르는 나만의 정상』(서계인 옮김, 시공사)은 그 고통의 생생한 다큐멘터리다.

그는 지난 해 5월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으며 시각장애인 최초로 세계 4대륙 등정 기록을 세운 불굴의 산악인. 망막박리증이란 희귀한 유전병으로 열 세 살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의 이야기도 가슴 아프지만 조금씩 시력을 잃어가며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얄궂게도 시력에 대한 집착을 포기했더니 씁쓸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요컨대, 맹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요리는 어떻게 하고 어떻게 걸어다니고 책은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정상인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게 더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사느니 맹인으로서 사는 게 더 나쁠 것도, 끔찍할 것도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82쪽)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됐을 때 에릭은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그는 시각장애인 여자친구를 위한 녹음테이프에다 이런 말을 남긴다. 앞을 못 보게 된 게 그녀의 잘못은 아니라고, 하느님이 벌을 주는 게 아니라고, 하느님은 그런 일을 하는 분이 아니라고. “그래, 하느님은 내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가셨지. 하지만 다른 것들로 채워주셨어. 이상한 방법으로,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는 새로운 것들로 말이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끝없는 모험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에릭의 이런 긍정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일반인이라면 도무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을 그는 이뤄냈다. 지팡이로 얼음과 바위를, 앞서 간 동료의 부츠 자국을 더듬으며 그는 정상까지 올라갔다. 어디쯤이 정상인지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한 발 한 발을 옮길 뿐이다. 그는 정상에 올랐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내 눈에는 아콩카과의 멋진 광경도, 내 발 밑으로 펼쳐진 아찔한 지상의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정상이란 십자가가 꽂혀있는 돌무더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상을 밟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 정상은 산 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정상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꿈이 실현되는 한 부분인 동시에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로서 존재하는 것이다.”(248쪽)

복잡하고 수수께끼같은 사람이지만 성녀는 아니다
에릭 와이헨메이어가 멀리 있는 산과의 투쟁을 벌였다면 헬렌 켈러는 가까운 사회의 편견과 맞서 싸운 인물이다. 그동안 헬렌 켈러는 위인전에나 등장하는 고리타분한 성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도로시 허먼이 쓴 평전 『헬렌 켈러 - A Life』(이수영 옮김, 미다스 북스)에서 그런 고정관념은 산산이 부서진다. 허먼은 4년 동안 헬렌의 고향 앨라배마와 애니 설리번의 모교 퍼킨스 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취재한 끝에 “헬렌 켈러는 전설 뒤에 숨어있었다. 그는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지만 성녀는 아니었다”며 신화를 과감히 깨뜨린다.

헬렌 켈러는 열 살 때 이미 유명인이 돼 나머지 생애를 유명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의 주위엔 사기꾼도 있었고 그를 신처럼 떠받드는 사람도 있었다. 볼 수도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그에게 주위 사람들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그를 옥죄기도 했다.

1916년 쇼토쿼 여행에서 만난 비서 피터 페이건과의 사랑이 깨진 것은 사회의 편견 때문이었다. 헬렌은 피터 페이건과 사랑의 도피를 꿈꾸지만 어머니에게 발각돼 꿈은 무산되고 만다. 사람들은 헬렌이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모습을 싫어했고, 언제나 성녀로 남아있길 바랬다. 헬렌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 짧은 사랑은 내 삶에서, 검은 파도에 둘러싸인 작지만 기쁨이 넘쳐나는 섬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과 욕망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다. 사랑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형편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389쪽)

눈은 기껏해야 겉모습만 볼 수 있다
바로 헬렌 켈러를 여자로 본다는 점이 이 평전의 새로움이다. 헬렌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이끌어간 한 장애인일 뿐이었다. 책 전반부에 구체적으로 묘사된 헬렌의 장애극복 노력은, 그래서 더욱 살갑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 특이한 부분은 애니 설리번을 묘사한 대목이다. 글쓴이는 애니 설리번을 ‘두 얼굴의 여자’라고 설명한다. 헬렌 켈러의 더듬이가 되기도 했지만 명예욕이나 돈 때문에 헬렌 켈러에 대한 험담을 서슴지 않았던 여자가 바로 애니 설리번이란 것이다. 신화 속에 감춰진 진실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에릭 와이헨메이어와 헬렌 켈러의 삶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장애라는 것이 때론 장애물이 아닌 도움닫이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가끔 도움닫이를 장애물로 착각하진 않는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여러 가지며 그 깨달음도 모두 다르다.

“눈은 기껏해야 겉모습만 볼 수 있다. 귀는 착각을 많이 한다. 냄새는 저 좋은 것만 맡게 되고, 입맛은 속기도 쉽거니와 변덕스럽다. 나는 그 어떤 감각보다도 만지는 것이 대상을 가장 깊이, 가장 뚜렷이 아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디드로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장님 코끼리 더듬기’역시 얼마나 무모한 편견인가를.


■ 헬렌켈러

■ 마음의 눈으로 오르는 나만의 정상 1
■ 마음의 눈으로 오르는 나만의 정상 2
■ 헬렌 켈러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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