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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정치인의 입보다 발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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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어제 나온 한국대학신문의 기사가 재미있다. 서울의 10개 대학 학보사가 학부생 9200명에게 물어본 대선 설문조사 결과다. 당연히 안철수 후보(이하 경칭 생략)의 인기가 상한가였고, 문재인이 중간, 꼴찌가 박근혜였다. 눈길을 끄는 건 그 다음의 반전이다. 세 후보의 이름을 모두 가리고 5개 항목의 청년 공약을 고르라고 하니 정반대였다. 박근혜가 3개 분야에서 이겼고, 문재인은 두 항목에서 1위, 안철수는 모두 2~3위로 내려앉았다. 박근혜의 소득에 따른 반값 등록금, 안보를 고려한 군 복무 단축, 특성화와 다양화를 위한 대학 지원이 문·안의 공약을 압도했다.

 왜 이런 역설(逆說)이 나왔을까. 세 후보의 지지율과 깜깜이 공약 조사가 완전 반대다. 이성적 판단보다 이미지에 홀린 탓이 아닌지 궁금하다. 하지만 ‘묻지마 지지’가 어디 대학생뿐일까. 노년 세대에 설문조사를 했어도 비슷한 역설이 일어날지 모른다. 지금 노년층의 지지율은 박근혜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공약만 따져보면 문재인·안철수 쪽이 훨씬 알뜰하다. 기초노령연금을 두 배로 올리고, 어버이날까지 공휴일로 삼는단다. 이런 깨알 같은 효자 공약에 꿈쩍도 않는 노년층의 지지 성향이 해괴할 정도다.

 냉정하게 보면 2030세대는 복지 공약에 인색한 후보를 선택하는 게 맞다. 노년 세대는 더 이상 세금 부담이 없다. 자신이 낸 돈보다 더 많은 연금과 복지 혜택을 누리다 가면 그만이다. 남은 설거지는 오래 세금을 내야 할 젊은이들의 몫이다. 지금 같은 대선을 두어 번만 더 치르면 연기금·건강보험은 거덜나게 돼 있다. 누가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화염병을 던지는가. 복지 후유증에다 일자리마저 꽉 막힌 청년 세대가 분노의 주역이다. 지금 화려한 대선 공약도 마이너스 통장 미리 당겨 써놓고, 남은 계산서는 아들딸에게 넘기려는 눈속임이나 다름없다.

 대선을 29일 남기고도 여전히 ‘깜깜이 대선’이라 한숨을 쉰다. 하지만 ‘예능 정치’로 접근하면 이보다 흥미진진한 대선은 없다. 안철수가 정치 초보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그는 후보 단일화를 자신이 유리한 여론조사 쪽으로 노련하게 몰고 갔다. 문재인과 양자토론에 이어 여론조사로 한판 승부를 낼 게 분명하다. 안철수는 무릎팍 도사·힐링캠프로 뜬 데 이어 드디어 오디션 프로로 끝장내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대선이 마치 “결과는 60초 후에 공개됩니다”라는 예능 프로의 긴박감으로 넘쳐난다.

 정치권과 개(犬)의 공통점이란 우스개가 있다. ‘가끔 주인도 몰라보고 덤빈다’로 시작해 맨 마지막에 ‘미치면 약도 없다’로 끝난다. 대선을 앞둔 지금이 영 그 꼴이다. 지난 주말 국회는 택시를 버스전용차로에 밀어넣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최대 피해자는 버스로 통근하는 수도권 신도시의 젊은 샐러리맨일 것이다. 정치권은 막무가내로 대형 마트 영업시간도 제한했다. 아마 젊은 맞벌이 부부가 가장 불편해질 것이다. 정치권이 침묵하는 다수는 외면한 채 목소리 크고 조직화된 표에 눈이 먼 분위기다.

 유권자들은 언제나 정책공약과 자질을 보고 뽑겠다는 모범답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속된 말로 개뿔이다. 깜깜이 조사를 하면 정반대 결과가 나오는 게 씁쓸한 현실이다. 각 신문들이 공들여 공약 비교를 하면 이런 비아냥들이 쏟아진다. “분석한답시고 혼자 소설 쓰고 있네” “먹물들은 쉬운 이야기를 먹고살기 위해 항상 어렵게 파고들지”….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이 마비될수록 이미지 정치와 허울뿐인 공약들이 판치기 마련이다.

 200년 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이런 유세를 했다. “지역민 여러분, 미안합니다. 저는 의회로 들어가면 우리 지역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서슴없이 여러분을 버리겠습니다.” 그러고도 버크는 당선됐다. 뚜렷한 철학의 정치인과 그런 인물을 골라낼 줄 아는 유권자가 없었다면 오늘날 영국 정치는 꽃피우지 못했다. 과연 버크가 지금 한국에 온다면 어떻게 됐을까. 친절하게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외치는 후보들에게 밀려 명함도 못 내밀었을 것이다. 옛말에 ‘정치인은 입을 보지 말고 발을 보라’고 했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 입만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