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순범 국제부인암학회 부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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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국제부인암학회 부회장에 당선된 강순범 교수는 “한국의 높은 의학수준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수정 기자

건국대병원 산부인과 강순범 교수가 최근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제14차 국제부인암학회(IGCS)에서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다. 75개 회원국이 투표해 당선됐다. 석학들과 어깨를 겨루며 세계 의료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강 부회장은 2003년 대한부인종양연구회(KGOG)를 창설하고, 2008년 아시아부인종양학회(ASGO)를 출범시켰다.

 -한국인 의사를 부회장으로 뽑은 배경은.

 “개인적으로 2006년부터 국제부인암학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2008년 아시아부인종양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경력이 인정받은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의료기술을 세계가 받아들인 것이란 점에서 자랑스럽다. 우리나라는 부인암 발병률이 높은데도 치료가 잘 이뤄져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고 있다. 학회에선 아시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선진 의술을 세계 무대에 선보이고, 최신 기술을 우리 의술에 접목시키도록 노력하겠다.”

 -국제부인암학회는 어떤 활동을 주로 하나.

 “1985년 창립된 이래 부인암의 예방·치료는 물론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국제기구다. 부인 종양·방사선 종양·내과 종양·병리과 전문의 등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병리학자·연구자 등 75개국 15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부인종양학회(GOG)와 함께 부인암 분야의 리더 역할을 한다.”

 -한국인이라면 특히 조심해야 할 부인암은.

 “부인암의 종류는 자궁경부암과 난소암, 자궁내막암이 대표적이다. 이중 우리나라에서는 자궁경부암 발병률이 가장 높다. 자궁경부암은 조기 검진으로 막을 수 있다. 조기 검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미국에서는 난소암·자궁내막암보다 자궁경부암 발병률이 낮다.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발병률이 감소 추세다. 자궁경부암의 전(前)단계인 자궁경부상피이형증을 발견해 암으로 진전되는 것을 막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자궁경부암 치료술은 세계 1위 수준이다. 자궁경부암 수술 후 5년 생존율이 80.5%(2009년 기준)로 캐나다·미국 등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 문제는 서구화된 식생활로 난소암(2위)과 자궁내막암(3위) 발병률이 무섭게 는다는 점이다.”

 -부인암의 새로운 치료법은.

 “표적치료제 개발에 세계가 집중하고 있다. 기존의 부인암 치료는 크게 수술·항암화학·방사선요법으로 나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표적치료제가 최근 연구되고 있다. 정상세포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집중 공략해 사멸시킨다. 부작용은 최소화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난소암에 대해 표적치료제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부인과 분야가 발전하려면.

 “산부인과 의사 수가 줄고 있다. 적절한 수가 산정과 산부인과 의사에 대한 적합한 대우가 우선돼야 한다. 그래야만 질 높은 산부인과 진료를 기대하고, 모성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세계적인 다기관 공동 임상연구에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결과를 다시 국내에 적용하는 국제 연구 협력체계가 탄탄하게 구축돼야 한다.

 -산부인과를 택한 계기는?

 “의대생이던 1970년대는 산부인과를 선도하는 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인유두종바이러스임을 밝힌 하우젠 박사는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복강경을 이용한 난관절제술이 최초로 미국부인과내시경학회(AAGL)에서 시연됐다. 1978년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하지만 당시 우리 의료 환경은 세계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자궁경부암 발병률이 높은데도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해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부인종양학에 처음 몸담았을 때 자궁경부암 수술 중 실혈양이 많았고 수술 후 대소변을 원활히 배출하지 못한 환자들이 많았다. 부작용을 줄이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실혈양을 줄이는 수술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약 30년 전 16세 소녀를 치료한 기억이 생생하다. 체중보다 더 무거운 43㎏의 양성종양이 난소에서 자라 배가 불룩한 소녀였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쳐 건강을 회복한 당시 소녀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심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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