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민주화 공약, 현실성으로 판단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지난 16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함으로써 유력 대선 후보 3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윤곽이 모두 드러났다. 박 후보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보다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혀 전면적인 재벌개혁을 공약한 야권의 문재인·안철수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동안 거론됐던 대규모 기업집단법 제정과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 등을 공약에서 제외함으로써 재벌 지배구조의 급격한 개편에서 한발 물러섰고, 재벌 총수에 대한 국민참여재판과 계열사 지분조정 명령제, 계열사 편입심사제, 주요 그룹사장단회의에 대한 법적 책임 부과 등도 뺐다. “과도한 재벌개혁으로 경제에 부담을 주어선 안 된다”는 박 후보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사실 세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대체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징벌적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의 도입,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기업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및 사면 제한,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진입 규제 등 재벌의 행태에 대한 규제 방안은 세 후보의 공약에 모두 나타난다. 금산분리 강화(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 축소)와 집중투표제 및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신규 순환출자 금지,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등 지배구조 개선에 관해서도 상당 부분이 겹친다.

 세 후보의 공약이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은 기존 순환출자와 출자총액제한제도 및 계열사 분리명령제 도입 등 기존 재벌구조 개편에 대한 입장이다. 박 후보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제외해 인위적인 재벌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에 문 후보는 기존 순환출자분 해소 및 의결권 제한과 함께 출총제 재도입을 약속했고, 안 후보는 기존 출자분의 강제처분과 계열분리 명령제 도입을 공약해 기존 재벌 체제의 전면적인 해체까지 포함하는 강도 높은 지배구조개편안을 내놨다.

 우리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무리한 지배구조 개편보다는 일감 몰아주기나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행위 개선에 초점을 맞추되 순환출자나 금산분리는 속도를 조절해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피력해왔다. 공허한 구호로 국민 감정을 자극하기보다는 현재의 여건에서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정답이 없는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겠다며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양극화 해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대표적인 공약이다. 또한 경제민주화 정책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관건인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아서는 곤란하다. 신규순환출자 금지나 출총제 부활,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진입 규제 등은 명백히 투자를 저해할 뿐,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외국자본에 국내시장을 내주는 부작용만 키울 우려가 있다. 유권자들은 이제 경제민주화 공약 가운데 무엇이 현실적으로 실천가능한 것이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유익한 것인지를 가려내야 한다.